신○년 12월 8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여러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
신○년 12월 8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여러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은 李秉淳의 曾孫이자 李晩禧의 아들로, 자가 圭範이다. 그는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는데, 의성김씨는 바로 김양진의 딸이다. 따라서 김양진은 이중석의 장인이 된다.
먼저, 한 해가 다 되어 가는 시기에 격조한 상황과 이중석에 대한 그리움에 대해 언급하고 이어 이중석이 사람을 보내 편지를 보내준 데 대한 안도감 및 미안함을 표하였다. 편지를 읽고서 査夫人께서 연이어 평안하시고 이중석도 건승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위안이 된다고 하였으며, 약한 딸의 상황은 그녀를 보지 않더라도 알 만하다고 하면서 걱정스런 심경을 전하였다. 慶이는 많이 자랐을 줄로 생각되는데 공부도 잘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 누나의 婚姻이 늦어지는 데 대해 비록 하늘이 정한 연분이 있겠으나 가난한 집에서는 빨리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내년 봄에는 失期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이전에 이중석이 祧奉禮를 지낸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자신이 가보지 못한 데 대해 자책감을 전하였다.
김양진은 나이가 들고 병이 늘어 이미 완연히 쇠약해진 자신의 상황을 전해 주고, 이제 걸어 다니기 시작한 어린 손자 소식도 전하였다. 또 지난달 그믐날에 아들을 낳은 次婦가 餘症이 많아 늙은 자신의 아내가 가서 간호하는 상황도 전하였다. 김양진은 聯稿(『聯芳世稿』인 듯함)를 校印하는 일로 陶社(陶淵書院인 듯함)에 가서 한 달 남짓 머물다가 돌아와 또 金溪로 가서 열흘을 보내다가 어제 저녁에야 돌아왔다고 하면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곤하다고 하였다. 朴谷(全州柳氏 세거지)의 어떤 이가 젊어서 科擧에 급제한 데 대해 다행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끝으로 婚說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川上에서 結婚하기로 정한 곳이 없다면 자신이 중매를 할 수 있으나 그간에 정해진 곳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고 이중석의 의향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신이 탐문하고 통지하기는 하겠으나 너무 확실히 믿지는 말라고 당부하였다.
이중석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이병순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