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년 1월 28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여러 근황과 세상 소식 등을 전하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
계○년 1월 28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여러 근황과 세상 소식 등을 전하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은 李秉淳의 曾孫이자 李晩禧의 아들로, 자가 圭範이다. 그는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는데, 의성김씨는 바로 김양진의 딸이다. 따라서 김양진은 이중석의 장인이 된다.
먼저, 험한 세상에서 서로 격조하여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이중석이 심부름꾼을 보내고 그 편에 편지를 보내 주니 펼쳐보고 위안이 되는 마음이 직접 만난 것보다 못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편지로 査夫人이 평안하고 이중석이 계속해서 건승하고 각 식구들도 고루 평온하고 慶이 어미도 어린 것을 데리고 예전처럼 지내고 있으며 돌림병이 없어졌음을 알게 되니 참으로 신년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였다.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고 있으나, 마누라가 毒感에 걸렸다고 하였다. 또 돌림병이 없어지자마자 곧바로 치성하게 되어 근일 전염된 자가 무려 6, 7인인데 仰役奴 2인이 어제 비로소 고비를 넘겼으나 그 어미는 아직까지 땀이 나지 않았다고 하면서, 이러한 상황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박실의 손녀는 전에 이미 보냈고, 鳳城의 于歸는 3월 3일로 날짜를 정했는데 험한 세상에 먼 길을 보내게 되니 매우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흉년 근심이 丙年과 癸年보다 더욱 극심하다고 하면서 앞으로 3, 4개월을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라고 하고, 이중석 쪽도 이와 같을 줄로 생각되는데 接濟할 방도가 없을 것이니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汝廓(李晩埈)과 平叟 두 公이 사망한 데 대해 약관 때부터 종유하던 정의를 생각건대 痛惜의 마음을 가누기 어렵다고 하였고, 그들을 의지했던 이중석의 애통한 심정이 어찌 편지에서 언급한 바와 같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順興의 변고가 과연 사실인지 묻고, 근래 이러한 일이 예사가 되었는데 하물며 올해는 더하다고 하였다. 근래 盈德에서도 이러한 조짐이 있었는데 사전에 계획이 누설되어 官에서 將校를 보내 체포하려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였다.
끝으로, 慶이의 婚事에 대해 만약 집안의 속사정을 상세히 알 수 있다면 가까운 데를 선택하지 않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內間끼리의 언문 편지에 慶이를 보내겠다는 말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하면서 이곳의 전염병 기운이 이와 같으니 데려다 놓는 것이 극히 염려되므로 전염병 기운이 없어지거든 차후에 연락하겠다고 하였다.
이중석(1854~1912)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