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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년 김양진(金養鎭)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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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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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양진, 이중석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형태사항 크기: 23.4 X 94.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병○년 김양진(金養鎭) 서간(書簡)
병(丙)자 들어가는 해의 5월 12일에 우헌(愚軒) 김양진(金養鎭)이 여러 근황을 전하고 말을 빌려 달라고 청하기 위해 이중석(李中錫)에게 보낸 편지이다. 가뭄 등 자연재해가 발생한 요즈음 상대와 상대측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의 경우는 석정 등 여러 곳을 돌아다녀 귀가 후 여독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 있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 흉년 든 상황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였고, 앞으로 참석해야 할 여러 곳의 장례식에 타고 갈 말을 빌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상세정보

丙年 5월 12일, 愚軒 金養鎭이 여러 근황을 전하고 말을 빌려 달라고 청하기 위해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丙年 5월 12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여러 근황을 전하고 말을 빌려 달라고 청하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李秉淳의 曾孫이자 李晩禧의 아들로, 자가 圭範이다. 그는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는데, 의성 김씨는 바로 김양진의 딸이다. 따라서 김양진이중석의 장인이 된다.
먼저, 몇 달 동안이나 만나지 못해서 이미 그리운데 이전에 인편이 있어도 편지하지 못했고 이중석이 편지해 주었어도 답장하지 못했으니 비록 일 때문에 바깥에 있었더라도 안타까운 마음이 깊었다고 하였다. 旱災와 風災가 발생하고 있는 이때에 査夫人과 이중석 형제, 자신의 딸 母女, 堂內 여러 사람들이 모두 평안하고 無病한지 안부를 물었다. 또 新岩이 한결같이 지내고 있고 요사이 혹 고향으로 와서 머물고 있는지 물었다.
김양진 자신은 2월 보름쯤부터 先齋에 가 머물다가 달포 전에야 비로소 일을 끝마쳤고 돌아온 지 며칠이 되지 않아서 또 石亭의 모임에 가서 열흘을 보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일전에 집으로 돌아와 피곤함이 심하여 자리에 쓰러졌다고 하면서 많은 기력을 잃었다고 하였다. 또 공부도 다시 중단하였으니 매우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다만 형님이 예전처럼 평안하시고 각 식구들이 별탈없이 지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지난번 행차에서 豊山으로 가서 이중석이 달포 전에 龍宮으로 가 歷訪하고 弔問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소년의 행동은 소홀하기 십상인데 지금 도리어 이와 같이 이중석이 주도면밀하니 참으로 듣기 좋았다고 하였다. 작황은 보리농사가 이미 흉년인데 추수도 글렀다고 하였다. 水田은 균열이 가고 고지대도 메말랐으니 날마다 人情이 들끓고 있다고 하였다. 풍년이 들어도 넉넉하지 않은 이중석 집안의 사정으로 봄과 여름을 어떻게 버티겠으며 앞으로 어떻게 대책을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또 이중석이 몇 군데에서 推尋하는 일을 모두 끝마쳤는지 묻고, 민간에 원성이 생기지 않게 처리하도록 하라고 당부하였다. 자신의 아들이 滯症이 없어지지 않아 椒水를 마시러 가려고 하는데 이중석과 함께 가고자 하니 旬望에 틈이 생기면 함께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하였다. 朴谷新昌의 葬禮가 20일 쯤에 蔚嶺 근처에서 치러지니 참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타고 갈 말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을 상세히 언급하고 이중석의 말을 이달 안으로 끌고 오면 잘 먹여서 다시 돌아온 뒤에 즉시 돌려주겠다고 하였다. 애로가 없으면 이번 편에 보내 달라고도 하였다. 끝으로 婚處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결론적으로는 婚談을 중단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고 하였다.
이중석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이병순의 증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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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병○년 김양진(金養鎭) 서간(書簡)

壻君 侍史 奉展。
積月違晤。已有{愔/灬}懷。況前此。有便而
不能書。有書而不能謝。雖緣因事在
外。而其爲觖恨則深。比來旱風告災。
未委此時
慈闈體力一例康護。
侍餘棣樂有相。女阿母女近免疾
����否。堂內僉候幷平安。新岩近節一
依。此間。或不來住故里耶。溯念不置。拙。
自二月望間。往留先齋。月前始得了訖。
歸未幾月。又赴石亭之會。費浹旬。日前
尋巢。憊甚落席。洽失幾丈氣力。所
謂職業。亦復弛廢。自悶可言。惟兄候依
安。各集姑遣保耳。頃行。自金溪
廣坪。轉向豊山。聞君月前龍邑之行。
致歷訪修弔問云。此固合修底人事。而少
年行止。易致疎忽。今乃若是周徧。儘可
樂聞也。年事。日氣如是。不知稅駕在何
地。大麥旣判歉。而秋事亦左矣。目今水田
龜坼。高原燋盡。鼎沸人情。日甚一日。
奈何。想貴邊亦同此。而君家豊亦不贍者。
春夏何以支度。來頭何以料策。只費
無益之念而已。數處推尋。皆已斷手否。此時
此路。極係詳審。切勿廣聞。從中區處。
無至有民間怨聲也。譏廉方行。此亦不可
不念也。府伯因無皁白。無亦無備。而新岩
托。何乃疎聽如是。可訝。兒子以有滯祟未
祛。方擬赴飮椒水。要與君偕之。如有旬望
暇隙。幷往似好耳。朴谷新昌
禮。以念間過行於蔚嶺近地。情禮不得不
臨穴。而家廐方空。且近地鬣子。俱爲歲甑。
無可借處。又無可意馬買立者。極爲良貝。
玆以奉告。貴鬣限月內牽送。則當善喂
還往後。趁爲奉完矣。如無相妨。今便付送
甚妙。諒爲也。昏處。其間或有可意否。午嶺
昨對應春探問。則連以昏期退托。而其
實則不獨昏期云云。吾若夾力而不成。則不如
不言。方在商量。而昏主愚無識見。似不如
自止爲得。第觀勢爲之耳。餘。拭昏只
此。不具。
扐 十二。婦父 養鎭 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