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年 12월 4일, 愚軒 金養鎭이 여러 가지 근황을 주고받기 위해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丙年 12월 4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여러 가지 근황을 주고받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은 李秉淳의 曾孫이자 李晩禧의 아들로, 자가 圭範이다. 그는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는데, 의성 김씨는 바로 김양진의 딸이다. 따라서 김양진은 이중석의 장인이 된다.
먼저, 몇 달 동안이나 병으로 누워 있느라 한 번도 정답게 만나지 못했으니 그리운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난번에 들른 宗玉[李晩濬]을 통해서 이중석이 보내준 편지를 받았는데 종옥이 돌아갈 때 답장하고는 싶었으나 그 당시에 편지할 상황이 못 되었기 때문에 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이중석이 이를 헤아리고 있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이어 査夫人이 계속해서 평안한지 안부를 묻고, 이중석이 海上으로 갔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날짜를 계산해 보면 정히 雪寒을 무릅쓴 것이었으니 어째서 四不出時를 범해서 갔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四不出時’란 집 밖에 나가지 않는 네 가지 때라는 의미인데, 몹시 추울 때, 몹시 더울 때, 큰바람이 불 때, 큰비가 올 때를 말한다. 지금은 이중석이 돌아왔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雪寒을 무릅쓰고 여행한 여독은 없는지 안부를 물었다. 이중석의 부인이자 자신의 딸이 딸을 낳은 데 대해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고 하면서, 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어찌 오랫동안 근심하겠느냐고 하였다.
김양진 자신은 일생 병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부해 왔는데, 여름과 가을 사이에 痢症과 眼眚으로 고생하였고 가을 말에는 우연히 胃塞症에 걸리어 몇 십일 동안이나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여 완전히 기력을 잃었다가 다행히 藥效에 힘입어 호전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완전 회복은 쉽지 않아서 아직까지 자리보전하고 있다고 하였다. 형님께서 한결같이 지내고 계시고 나머지 식솔들이 별 탈 없는 것은 다행이라고 하였다. 荒憂는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하다고 하면서, 장래 살아갈 대책을 어떻게 요리하고 있는지 물었다. 서울 소식을 근래 혹 받았는지도 물었다. 추신에서는, 자신의 아들이 내달 초에 龍溪로 가려고 한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이중석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이병순의 증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