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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년 김양진(金養鎭)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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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양진, 이중석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형태사항 크기: 27 X 32.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기○년 김양진(金養鎭) 서간(書簡)
기(己)자 들어간 해의 7월 12일에 우헌(愚軒) 김양진(金養鎭)이 産婦의 몸조리 등과 관련하여 이중석(李中錫)에게 보낸 편지이다. 처음 상대의 편지를 받아 상대측의 안부를 확인하여 위안이 되었지만, 자신의 딸이자 상대의 아내가 낳은 아이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산부가 죽지 않은 점에 안도하였다. 그리고 산부의 산후조리 등에 관해 당부하면서 약으로 쓰일 전복을 구해야 함을 언급하였다. 이어서 자신의 근황을 알리며 식구들의 병, 수해로 인해 부모님 묘소의 일부가 붕괴된 상황 등의 소식을 아울러 전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상세정보

己年 7월 12일, 愚軒 金養鎭이 産婦의 몸조리 등과 관련하여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己年 7월 12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産婦의 몸조리 등과 관련하여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李秉淳의 曾孫이자 李晩禧의 아들로, 자가 圭範이다. 그는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는데, 의성 김씨는 바로 김양진의 딸이다. 따라서 김양진이중석의 장인이 된다.
먼저, 전에 없던 큰 재난을 겪어서 서로 간에 격조했던 터라 아침저녁으로 염려하고 답답하여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 이중석이 종을 보내어 편지를 보내주니 읽기 전에 무슨 나쁜 소식이 있지 않을까 오히려 의아하여 감히 종에게 안부를 물어보지도 못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편지를 보고서 이중석의 모친[宣城金氏]이 평안하고 이중석 형제가 건승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딸인 義城金氏가 낳은 아기가 사망한 것에 대해서 이것이 무슨 일이냐고 하면서, 그녀가 죽지 않은 것이 천행이라고 하였다. 産後의 병증을 만약 제때 치료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는 건강을 잃기 십상일 것이라고 하면서, 반드시 조리하여 기필코 수습하라고 당부하였다. 여기에 소용되는 全鰒은 자신에게는 없다고 하면서, 바닷가 집안과 혼인 관계가 많은 下溪에 가서 물어본다면 혹시라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김양진 자신은 독한 학질을 앓아서 기력을 수습하지 못하였고 식구들도 暑濕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병을 앓고 있다고 하면서,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또 어버이 묘의 바깥 계단이 이번 장맛비로 붕괴된 관계로 아이들이 어제 들어가 修築하느라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달 5일의 비가 유독 이 근방에만 내렸다고 할 수 있고 이중석이 보내준 편지에도 宜仁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과연 水災를 면하였는지를 물었다.
이중석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이병순의 증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기○년 김양진(金養鎭) 서간(書簡)

圭範 侍棣史 奉謝。
閱來無前浩劫。漠若蓬弱。夙宵慮鬱。殆
欲發狂。望外奚來。開緘之前。疑怪。不敢輒問
安否。見書知
慈闈節宣萬衛。侍棣連相。是庸慰釋。但娩
故抱玉旋墜。是甚故也。其母不死天也。産後之症。若不
趁治。則日久易至難宜。須拔例調護。期於打疊也。全
蝮此無求治者。奈何。下溪多有海上嫁家。往問則或有
得耶。此症因氣虛而發。然扶補元氣甚難。奈何。拙。間
經毒痁。氣力都不收拾。家眷亦困於暑濕。多有告病
者。甚悶。且親墓外堦。今當潦水又崩圮。兒輩昨入
修築。姑未見還耳。鄭壻去晦已歸耳。水災今
初五雨。此近可謂偏被。而來書不及仁庄。果終始免
得耶。餘。心亂。只此。
七 十二。婦翁 養鎭 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