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에 李迪鎬가 조카의 취직 문제 등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李睦鎬에게 보낸 편지
11월 4일에 李迪鎬(1890~?)가 조카의 취직 문제 등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李睦鎬(1885~?)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迪鎬와 李睦鎬는 모두 李中鎔의 아들이다. 李迪鎬는 李中鎔의 셋째아들이고, 李睦鎬는 장남인데 후에 伯父인 李中錫의 次養이 되었다. 이는 長文의 편지에 속하는데, 그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먼저, 조카의 취직 문제에 대해 언급하였다. 郡守에게 탐문해 보니 전날에 언급했던 곳은 경비가 부족하여 현재 유보해 두고 있는데 아마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면서 다시 이력서를 요구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즉시 제출하였는데 필시 北支로 이달 17, 18일에 이민 가는 郡의 雇員 徐炳柱의 후임 자리일 것이라고 하면서, 월급은 많지 않으나 우선 취직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조카가 침구 등을 깨끗이 세탁해 놓고 다시 기별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으며, 촌내에 10여 세 되는 雇女를 구할 곳이 있는지 물었다.
이어 尙州殖銀에서 돈을 대출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低利를 더 대출하여 高利 대출을 갚는 것이 得計인 것 같다고 하면서 李睦鎬가 서류를 상세히 보고 빠짐없이 날인한 다음 源啓에게 보여주고 상의해 보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印刷所의 1년 매상과 지출에 대해 상세히 알려 주었다. 요컨대, 1년 매상 4,000圓 내외에서 職工의 월급, 가게 임대료, 雜支出, 學費 등을 제하고 나면 300圓이 되는데 생활비가 부족한 형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년을 지나면 학비 지출이 줄어들 것이니 예산과 맞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다음으로는, 은행 소유로 되어 있는 자신의 주택 가운데 기와집 2棟과 垈地 400여 坪을 자신이 매입하고자 하는데 은행에서 자신이 다년간 거래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전부 450圓 이내로 매도할 의사가 있다고 하였다. 샀다가 뒷날 매도할 때 현시세보다 하락할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하였으며, 자신의 생각으로는 農牛를 팔아 하더라도 무방할 것 같다고 하면서 李睦鎬가 생각해 본 뒤에 回示해 달라고 청하였다. 근래 印刷物에 대한 주문이 답지하여 거의 300여 圓에 이르는데 紙物이 부족하여 현재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하였다. 吉이의 婚談은 비록 좋기는 하지만 상대 집에서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 같고 규수도 아직 小學校를 나오지 않았으니 吉이도 내켜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좌우간에 탐지한 뒤에 다시 말씀드릴 계획이라고 하였으며, 在學生의 結婚 금지는 비록 법률에는 없는 것이지만 이는 학교의 규정이기 때문에 安東農林에서는 절대 불허한다고 한다는 정보를 전해 주었다.
다음으로, 이 편지와 함께 보내는 서류 가운데 한 건은 安東 土地의 保存과 관련하여 安殖 手續 때 제출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21圓을 조카 由로 하여금 가지고 禮安의 代書人에게로 가서 모두 手續하게 한 뒤 禮安의 代書人으로 하여금 醴泉의 代書人에게 의뢰하여 모두 手續하게 한 뒤에 자신에게 발송해 달라고 당부했다. 杏村의 2개 印刷所는 자금이 없어 허송세월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자금이 있다면 유리할 것이지만 자신도 자금이 없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하였다. 聞慶邑에 10만 坪 규모의 석탄 공장이 건설된다고 하였는데 그저께 本社의 地質課長과 本道의 기사가 실지 조사한 결과 炭質이 매우 좋다고 했다 하니, 실제로 공장이 세워진다면 聞慶이 커질 것이 확실하다고 하였다. 또 어제 郡守가 자신을 불러 京城의 和信本店에서 聞慶 邑內에 連鎖店을 설치하고 싶어 하니 적합한 인물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고 하면서, 蓂․敦 두 從에게 말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4,000圓 상당의 토지를 抵當하면 連鎖店을 내준다고 했다고 하였다.
李迪鎬(1890~?)는 본관이 眞城, 자가 德明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후손으로, 李中鎔의 셋째아들이다. 李睦鎬는 자가 德乃이고, 본관이 眞城으로, 李秉淳의 曾孫인 李中錫의 次養이다. 생부는 李中錫의 동생인 李中鎔이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