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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이언순(李彦淳)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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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언순,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형태사항 크기: 23.3 X 42.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년 이언순(李彦淳) 서간(書簡)
1월 20일에 이언순(李彦淳)이 자신이 입직(入直)하고 있는 상황, 귀향(歸鄕) 일정 등을 알려 주기 위해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일전에 옥당(玉堂) 4인이 이러한 시기에 패초(牌招)를 어겼기 때문에 의금부에 내려져 추고를 받고 나서 사판(仕版)에서 삭제당하는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황송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동관(同官) 윤치후(尹致後)와 같이 허둥지둥 나와 숙배(肅拜)하고 입직(入直)하고 있는데 마음이 몹시 불편하다고 하였다. 모레 출직(出直)할 것인데 재차 입직하게 될 때 결단할 생각이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월 20일에 聾窩 李彦淳(1774∼1845)이 자신이 入直하고 있는 상황, 歸鄕 일정 등을 알려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월 20일에 聾窩 李彦淳(1774∼1845)이 자신이 入直하고 있는 상황, 歸鄕 일정 등을 알려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이언순은 17일에 遠村李彙朝가 올라온 편에 원촌에 있는 여러 從兄의 편지를 받았으나 집에서 보낸 편지는 받지 못했다고 하였다. 이언순의 老親이 堂을 내려오다가 발을 다쳤는데 곧바로 점차 쾌차되어 갔고 正初에는 또 돌림감기에 걸려 중간에 정신없이 보내다가 지금은 막 병세가 덜해져 가고 있으나 아직 起動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李彙朝가 말해 주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서신을 보지 못한 상황이기에 해가 바뀌도록 부모님을 떠나 있는 회포를 진정시키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래서 장차 고향으로 출발하려던 즈음에 그저께 저녁에 있은 政事에서 또 校理의 首望에 들어 낙점을 받았다고 하면서, 惶感하다고 하였다.
惠慶宮의 환후가 대단히 심하여 14일부터 直宿하다가 그저께 저녁에 撤直하고 방금 輪直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환후가 점차 쾌차되어 가니 그지없이 기쁘고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일전에 玉堂 4인이 이러한 시기에 牌招를 어겼기 때문에 義禁府에 내려져 推考를 받고 나서 仕版에서 삭제당하는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황송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同官 尹致後와 같이 허둥지둥 나와 肅拜하고 入直하고 있는데 마음이 몹시 불편하다고 하였다. 모레 出直할 것인데 재차 入直하게 될 때 결단할 생각이라고 하였다.
이어 春到記가 오늘 설행되었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금전에 대한 언급이 이어지고 있는데, 馬主 운운한 것으로 보아 말을 매매하는 것과 관련된 언급으로 보인다. 자신은 이달 그믐과 내달 초 사이에 上疏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하면서, 李秉淳이 그 시기에 모쪼록 替直하여 자신이 인사를 올리고 내려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년 이언순(李彦淳) 서간(書簡)

鎖直仰慕之際。忽伏承
下札。今已何等伏慰。而第受香
時觸風。
愼節尙爾彌留。伏慮萬萬。然伏想
攝理有方。畢竟收勿藥之慶矣。
從弟。十七日。遠村彙朝上來便。得
遠村諸從兄之書。而未得接家書。
老親客臘晦初間。有下堂之厄。
仍卽漸向快復。正初又添輪感。
中間蒼黃度之矣。今纔向減。
而尙未起動云云。此則彙朝口傳。
且不見親書。承聞平信。換歲離違
之懷。尙難自定。況聞靡寧之
泰平。心神焦灼。將欲發行之際。
再昨暮政。又入校理首擬蒙
點。天恩惶感無地。
惠慶宮患候大段不寧。自十四日直宿。
再昨暮撤宿。方今輪直。而患候漸向快
復。慶幸何極。日前玉堂四人。以此時違牌皆
禁推。施以削板之典。故分義惶悚。弟則
與同官尹致後。章皇出肅而入直。然心甚歉
然。再明當出
直。再次入直
時。當有自處
之計耳。春
到記今日設
行耳。入直時。
弟以三緡八錢
銅。付置泮主
勤托矣。
下示如此。其
二十兩及三兩八
錢及合二錢。爲
先送于馬主
之意。書及善
之氏伏計。李
長直丈姑未直。入直
後覓來送
之耳。下送
二十兩二錢。
付在何處耶。
倘無虛疎之弊耶。不能出見。又◘弟將欲以
今晦初間。上疏返面伏計。伏望
兄主旣得假官狀。則晦初間某條替直。以爲
拜候下去之地。如何如何。海平諺書封。方在泮主家。
其或可覓夫否。宜仁大都。姑未平安。而本第書元不來。
可怪可怪。餘。便忙。不備。伏惟。
正月 二十日。族從弟 彦淳 上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