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에 聾窩 李彦淳(1774∼1845)이 자신이 入直하고 있는 상황, 歸鄕 일정 등을 알려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월 20일에 聾窩 李彦淳(1774∼1845)이 자신이 入直하고 있는 상황, 歸鄕 일정 등을 알려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이언순은 17일에 遠村의 李彙朝가 올라온 편에 원촌에 있는 여러 從兄의 편지를 받았으나 집에서 보낸 편지는 받지 못했다고 하였다. 이언순의 老親이 堂을 내려오다가 발을 다쳤는데 곧바로 점차 쾌차되어 갔고 正初에는 또 돌림감기에 걸려 중간에 정신없이 보내다가 지금은 막 병세가 덜해져 가고 있으나 아직 起動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李彙朝가 말해 주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서신을 보지 못한 상황이기에 해가 바뀌도록 부모님을 떠나 있는 회포를 진정시키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래서 장차 고향으로 출발하려던 즈음에 그저께 저녁에 있은 政事에서 또 校理의 首望에 들어 낙점을 받았다고 하면서, 惶感하다고 하였다.
惠慶宮의 환후가 대단히 심하여 14일부터 直宿하다가 그저께 저녁에 撤直하고 방금 輪直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환후가 점차 쾌차되어 가니 그지없이 기쁘고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일전에 玉堂 4인이 이러한 시기에 牌招를 어겼기 때문에 義禁府에 내려져 推考를 받고 나서 仕版에서 삭제당하는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황송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同官 尹致後와 같이 허둥지둥 나와 肅拜하고 入直하고 있는데 마음이 몹시 불편하다고 하였다. 모레 出直할 것인데 재차 入直하게 될 때 결단할 생각이라고 하였다.
이어 春到記가 오늘 설행되었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금전에 대한 언급이 이어지고 있는데, 馬主 운운한 것으로 보아 말을 매매하는 것과 관련된 언급으로 보인다. 자신은 이달 그믐과 내달 초 사이에 上疏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하면서, 李秉淳이 그 시기에 모쪼록 替直하여 자신이 인사를 올리고 내려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