癸年 7월 3일, 愚軒 金養鎭이 여러 가지 근황을 전해 주고 방문해 달라고 당부하기 위해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癸年 7월 3일에 愚軒 金養鎭(1829∼1901)이 여러 가지 근황을 전해 주고 방문해 달라고 당부하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은 李秉淳의 曾孫이자 이만희의 아들로, 자가 圭範이다. 그는 義城金氏와 혼인하였는데, 의성 김씨는 바로 김양진의 딸이다. 따라서 김양진은 이중석의 장인이 된다.
먼저, 이때처럼 서신 왕래가 없었던 적이 없었고 더구나 아주 무더운 여름을 겪고 나니 이중석이 매우 그리웠다고 하였다. 이러한 가문 철에 이중석의 어머니, 이중석 형제, 慶이 母子, 堂內 여러 사람들이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김양진 자신은 여름 들어 겪은 일을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두려울 정도라고 하였다. 從孫이 말 때문에 다쳐서 사경을 헤맸는데 자신이 龍寺에 있다가 와서 한 달 남짓 구료하여 겨우 회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자신의 아내는 우연히 얻은 柴毒이 부스럼이 되어 중간에 5, 6일 동안 손을 쓰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아이들이 번갈아 입으로 빨아내어 지금은 농즙이 모조리 나오고 浮氣도 조금 빠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부스럼 자리에 가끔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으니 毒氣가 아직 다 없어지지 않은 것 같다고 하였다. 자신도 龍寺에서 소식을 듣고 와서 고뇌하던 끝에 眼眚이 또 발작하여 현재 몸을 수습하지 못한 채 신음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 그 밖의 우환거리가 한둘이 아니라 많다고 하였다.
가뭄 피해를 이곳이 가장 심하게 입었다고 하였는데, 고지대나 저지대 할 것 없이 모조리 赤地가 되었으니 지금 비록 비가 내리더라도 소용이 없거니와 비가 내릴 기색도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중석이 사는 곳은 소나기가 내려 농작물이 말라 죽는 지경은 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참으로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精舍가 봄에 완공되었는데 건물이 조용하고 경치가 트였으니 자못 이곳에서 유유자적할 만하다고 하였다. 봄과 여름에는 자신이 집에 있지 않아 精舍에 오랫동안 있지 못했고 지금은 또 우환으로 인해 자주 가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서늘한 기운이 생길 때 이중석이 한 번 와주면 精舍에서 평온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이중석의 從叔이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이중석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이병순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