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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이만후(李晩厚)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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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만후, 이중석
형태사항 크기: 21.4 X 43.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80년 이만후(李晩厚) 서간(書簡)
1880년 9월 26일에 이만후이중석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석의 아내 의성김씨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하고, 또 추과에 자주 응시하는 것이 춘시보다 나은데 이중석이 한 번도 응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다고 하였다. 한편 감천에 투장한 무덤을 아직 금지시키지 못했으니 매우 애통하다고 하면서, 현재 일제히 가려고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초산에서 생산되는 지필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효심

상세정보

1880년 9월 26일, 李晩厚가 집안과 고향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李中錫에게 보낸 편지
1880년(고종 17) 9월 26일에 李晩厚가 집안과 고향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李中錫(185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의 주요 내용은 楚山府使로 재직하고 있던 李晩耆를 따라 간 李中錫에게 李晩厚가 집과 고향 소식을 전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편지의 작성연도인 경년李晩耆楚山府使 재직 시기를 감안할 때 경진년1880년(고종 17)이 된다. 주요한 전달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지난달에 李中錫의 아내인 義城金氏가 아들[李達鎬]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또 형수님[李中錫의 모친 宣城金氏]의 건강이 크게 악화되지 않았다고 하였고, 李中錫의 동생도 잘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만약 李中錫이 편지에서 언급한 대로 李晩耆가 그 치적을 인정받아 임기가 연장되어 돌아오는 시기가 지체된다면 李中錫에게는 餘慶이니 어찌 아름답고 기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秋科에 자주 응시하는 것이 春試보다 나은데 李中錫이 한 번도 응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다고 하였다. 甘泉에 偸葬한 무덤에 대해 아직까지 금하지 못했으니 통박한 마음을 이루 형언할 수 없다고 하였다. 현재 일제히 나아가고자 하지만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농사는 전국이 풍년이라고 하니 이는 자신과 李中錫의 똑같은 즐거움이라고 하였다. 紙筆이 가장 요긴한 물건인데 楚山에서 생산한다고 하니 자신을 생각해서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李中錫(1854~1912)은 본관이 眞城, 자가 圭範이다. 그는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인 李秉淳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陶山書院의 院任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80년 이만후(李晩厚) 서간(書簡)

謹拜謝書。
千里一札。儘覺情誼之篤也。而半歲莫
聞。似若無心之佛者。卽無札者也。仍審
菊秋。
旅體萬重。觀玩做味亦何如。令監政
候康旺否。區區願聞。與歲俱深。降功服從。
此歲經歷。便同㥘界。而惟幸猶候僅
免大添。生庭候粗寧耳。大小家痘兒。今
雖蘇完。曷無餘祟耶。左右家貌樣。
一室喜慶。爲故人贈賀者多矣。去月擧
丈夫兒。而旣經三洛七朝。則同慶於粗
也。兄弟之順痘也。嫂主經閱之餘。別無
大添。季從奉率善過耳。若如來
示加瓜。而歸期遲久。則於君許餘慶。
豈不美且喜哉。秋科之累擧。猶勝於
春試。而一未參場。慨恨。近其於有數存
焉。奈何。感泉偸埋。尙未禁窟。痛
迫情私。何可盡喩。方營齊進。而
亦未知如何耳。年事。八路登稔
云。此吾與子。一般之樂也。復
何羨乎。大抵邑物。
必多要用處。而紙筆亦最。産
於楚邑云。吾雖忘於故人。君不知
故人耶。互笑互笑。
小錄所示之說。此馬齒加裝之
物也。何待吾之覓不覓耶。若過
今冬。而仍爲臥置。則利上生利。
或不至傷財之歎耶。從則
無關於出債報債。而爲君
之地。豈不愁悶者哉。餘。奉
書卽答。只付數字。而不能盡細
細山積之懷。量之否。
九 卄六日。降功服從 晩厚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