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李龜邦이 여러 가지 근황을 주고받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4월 13일에 李龜邦이 여러 가지 근황을 주고받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龜邦은 鏡潭 李守貞의 손자이다. 먼저, 봄 초에 李秉淳이 보내준 답장은 이별한 뒤 처음 있은 서신이라 지금까지 위안이 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근래 다시 격조하여 그리워했다고 하면서, 參奉으로 直宿하고 있는 李秉淳의 안부를 물었다. 李龜邦 자신은 어버이께서 늘 위독하시고 신병도 차도가 없는 가운데 寃祥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는데 茁浦宅에 천연두가 갑자기 생기고 돌림병도 크게 유행하여 안심하고 祭祀를 지낼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祭祀를 지낸 뒤에 비접하고자 하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돌림병이 없는 깨끗한 곳이 조금도 없어서 갈 곳이 없으니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九兒의 병이 끝내 완쾌되지 않아서 金 倅의 和劑를 보고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며느리가 병을 앓아 일전에 데려와서 약을 써보고자 하는데 사정이 또 이와 같이 생겼으니 형편상 버려두고 나가야 할 것 같다고 하였다. 大村의 각 房에 특별히 다른 사고는 없는데 아이들이 모두 榜目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春窮 또한 이와 같으니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또 李秉淳의 季氏가 숙병이 다시 발작하여 비록 대단치는 않더라도 기동하는 것은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또 이 시기에 가족끼리 헤어지는 소란스런 일이 생겼다고 하니, 이 소식을 듣고서 매우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召羅 누님의 환후도 오랫동안 차도가 없어 아무래도 난치병인 듯싶으니, 먼 곳에서 李秉淳이 이 소식을 듣고서 마음을 가누지 못할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注書가 청한 것에 대해 편지를 작성하여 보낸다고 하면서, 믿을 만한 사람으로 하여금 전달하고 답장을 받아 오게 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상세한 내용은 그 편지에 있으므로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石役에 대해 과연 조정의 논의가 있었다고 하는지 물었다. 추신에서는, 都事 형님도 평안한지 물었고 砂唐을 입수할 방도가 혹 있거든 조금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