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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진성이씨 은졸재 문중 후산(後山) 금장(禁葬) 완의(完議)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D.1812.4717-20150630.0625254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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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증빙류-완의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완의
작성주체 이구복, 이구로, 이구홍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작성시기 1812
형태사항 크기: 49.6 X 4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2년 진성이씨 은졸재 문중 후산(後山) 금장(禁葬) 완의(完議)
1812년(순조 18) 10월 14일에 진성이씨 은졸재 문중에서 후산(後山)에 입장(入葬)을 금하는 것을 결의하고 작성한 완의(完議)이다. 이번에 은졸재 문중의 강정댁(江亭宅)에서 상을 당하여 이곳에 무덤을 쓰려고 했지만, 노소가 모여서 금단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앞으로 후산(後山)에 묘를 쓰지 못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명경일

상세정보

1812년에 진성이씨 은졸재 문중에서 後山에 入葬을 금하는 것을 결의하고 작성한 完議
1812년(순조 18) 10월 14일에 진성이씨 은졸재 문중에서 後山에 入葬을 금하는 것을 결의하고 작성한 完議이다. 완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번에 은졸재 문중의 江亭宅에서 상을 당하여 後山의 標를 설치하여 둔 곳에 산소를 쓰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지역은 크고 작은 廟宇와 至親의 무덤이 主山으로 삼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자고로 그곳은 감히 入葬하여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다. 즉 이 산을 금하고 보고한 후라야 선조의 廟宇를 지킬 수 있고, 종가의 터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강정댁에서 여러 날 애걸했지만 결국 들어주지 못하였다. 그리고 결국 斬土하는 날에 여러 노소가 모여서 문서에 착명하고 무덤을 쓰지 못하게 한 이후에 그치는 일이 발생하였다.
완의는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앞으로 後山에 묘를 入葬하지 못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명경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2년 진성이씨 은졸재 문중 후산(後山) 금장(禁葬) 완의(完議)

後山禁葬完議。
江亭喪慘。係關門運。慟哭慟哭。聞其山地。牢定於後麓置標處。而大少廟宇及
至親諸。家皆以是山爲樂主。自古至今。無敢入葬者。盖以此也。是山禁保。而後大小
先廟可保也。世傳宗址可保也。老少合議。多日哀乞。而終無面惑。則至親厚誼。有不可
顧矣。喪家慘景。亦不得念矣。玆不獲已老少齊會。一紙着名。其於斬土之日。齊進禁斷
而後已。此乃各出於爲先之義。而事到此境。尤極痛哭。
壬申十月十四日。

李龜福 [着名]。李龜老 [着名]。李龜洪 [着名]。李龜天 [着名]。李龜洙 [着名]。李龜蓍李龜時 [着名]。李龜三 [着名]。

李秉淳。供職在京。李民淳 [着名]。李性淳李保淳 [着名]。李大淳。出外。李行淳。出外。李好淳 [着名]。李魯淳 [着名]。李眞淳 [着名]。李謙淳 [着名]。李必淳 [着名]。李在淳 [着名]。李同淳 [着名]。李若淳 [着名]。李進淳 [着名]。李再淳。喪人。

李長淳 [着名]。李華淳。喪人。李選淳 [着名]。李遇淳 [着名]。李用淳李遠淳。出外。李一淳 [着名]。李亨淳。赴科。李希淳 [着名]。李可淳李仲淳。赴科。李運淳。出外。

李彙正。赴科。李彙直 [着名]。李彙冕 [着名]。李彙八 [着名]。李彙芼 [着名]。李彙蘭 [着名]。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