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12월 4일, 崔潤壽가 李㙖의 贈職 행사와 관련하여 보낸 편지
1901년 12월 4일에 崔潤壽가 李㙖의 贈職 행사와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두 곳의 소식이 마치 星河처럼 아득히 멀 만큼 격조하였는데, 우연히 자신이 霞洞에 왕래한 것으로 인하여 상대를 만나서 하룻밤을 자게 되니 이는 참으로 쉽게 만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修人事만 하고 돌아오게 되었으니, 지금까지도 매우 아쉽다고 하였다. 이어, 몹시도 추운 12월에 상대 및 가족들에 대한 안부를 묻고 특히 初仕한 상대 아들의 안부를 궁금해 하였다. 崔潤壽 자신은 연로하신 어버이의 병환이 위중해지셨기 때문에 초조한 마음을 형언하기 어렵지만 다행히 각 집안사람들이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상대의 田庄이 유독 天災를 심하게 입었다고 하는데,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어떻게 생계 문제를 해결하고 있느냐고 하면서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崔潤壽는 상대의 조상인 俛庵 先生의 焚黃禮가 언제로 예정되어 있는지 묻고, 그때 자신이 마땅히 참석해서 이전에 逋慢했던 자신의 잘못을 속죄해야 하지만 세밑의 분주한 상황에서 참석 여부를 미리 기약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자신의 집안과 상대 집안이 지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소식을 주고받았던 데에서 두 집안의 오래된 契分을 알 수 있는데,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으니 不敏한 죄를 자책하고는 있으나 형편상 또한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 하였다. 끝으로, 상대 族兄이 방문해 준 데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그와 헤어졌을 때의 섭섭했던 마음을 아울러 전하였다.
참고로, 李㙖는 사도세자가 1899년에 국왕의 지위를 거쳐 황제로 추존되는 典禮가 이루어진 것을 계기로 사후인 1900년에 嘉善大夫 內部協辦을 贈職받았다. 또한 이와 동시에 그의 祀孫을 錄用하는 恩典을 받게 되었다. 편지 본문에서 상대 아들이 初仕하게 되었다는 것도 이러한 恩典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