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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류이좌(柳台佐)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837.4717-20140630.008125703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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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이좌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작성시기 1837
형태사항 크기: 29 X 41
장정: 낱장
수량: 2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하회 풍산류씨 화경당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37년 류이좌(柳台佐) 서간(書簡)
1837년 3월 16일, 류이좌가 내일이나 모래쯤 막내아우가 미동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리는 편지이다. 먼저 자신은 병으로 괴로워하고 있으며 자신의 아들이 낮에 돌아온 사실을 전하고 있다. 이어서 막내아우가 경기에서 성묘를 하고 내일이나 모래쯤에 미동에 도착할 것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북어와 말린 청어를 보내고 마을에 전염병이 번져서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837년 3월 16일, 柳台佐가 내일이나 모래쯤 季氏의 美洞 당도 소식을 알리는 편지
1837년 3월 16일, 柳台佐(1763-1837)가 내일이나 모래쯤 季氏의 美洞 당도 소식을 알리는 편지이다.
류이좌는 심부름꾼 편으로 미동의 편지를 받고 가족의 안부가 다 좋은 것을 알아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병이 들어 매우 힘들게 지내고 있으며, 아들 祈睦 일행이 한 낮에 들어왔으나 범절을 의례대로 시행하지 못해 한탄스러워하였다. 본론에는 季氏가 이곳의 아이들과 함께 내려 올 것인데, 京畿에서 성묘한 뒤에 출발하여 내일이나 모래쯤 美洞에 이를 것이라고 전하였다. 심부름꾼이 편지를 가지고 왔을 때 답장을 쓰니라, 너무 바빠 편지의 예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는 말로 끝맺고 있다. 심부름꾼이 돌아갈 때 북어 2束과 말린 청어 1級을 함께 보냈다. 편지를 마무리하고 미처 빠트린 내용은 추신하였다. 令의 편지는 감격되고 위로되지만 어지러워 답장을 작성하지 못했으니 마땅히 인편을 기다리며, 孫兒의 疥瘡은 점차 나아지고 있으나 마을에 전염병이 번지고 있어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발급인 柳台佐는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士鉉이며, 호는 鶴棲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으로,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 문과 급제한 이후 승문원가주서를 비롯하여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鶴棲文集』 20권 10책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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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37년 류이좌(柳台佐) 서간(書簡)

美洞侍座下。回敬。北魚二束。貫目一級。
河北謝狀。
謹封。
伻來。拜
書。謹審卽辰。
侍省餘啓處。珍休。
庇節均善。何等仰慰。弟。病狀
恒苦。兒一行。今午入來。而凡節不得
如例設行。咄嘆咄嘆。意謂
季氏行。必與此中兒輩。同爲下來。
今聞兒子言。近圻奠掃後發行。再
明間。當到貴中云矣。劇擾只此。不
宣謝禮。
丁酉三月十六日。 病弟。台佐。拜。

朴令書。感慰。而擾未修謝。當俟后便。孫
兒疥瘡仍爲就平。而村沴漸熾。是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