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7년 6월 22일, 柳台佐가 美洞으로 보내는 안부 편지
1837년 6월 22일, 柳台佐(1763-1837)가 美洞으로 보내는 안부 편지이다.
편지의 서두는 書院에서의 모임은 진실로 좋은 일이며, 조용히 談論하지 못하고 곧 헤어지게 되어 아직까지 섭섭한 마음이 남았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 안부 인사를 하는데, 상대방의 편지를 받고 부모님을 모시는 형제분들의 체리가 한결 같이 평안하고, 자제들도 절도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 되고 속이 시원하다고 하였다. 류이좌는 더위를 보내는 것이 견디기가 어려우며, 孫兒는 잘 돌아와 다행이라고 하였다. 정신이 어두워 빠뜨리고 쓰는지라 편지의 예를 갖추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끝맺었다. 추록은 妙洞으로 보내는 편지를 오랫동안 내버려 두었다가 이번에 부치니 인편을 찾아서 잘 전해주길 간절히 바라며, 舍季가 商山[尙州]으로 행차한 것도 잘 돌아왔으니 매우 다행이라는 내용이다.
발급인 柳台佐(1763-1837)는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士鉉이며, 호는 鶴棲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으로,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 문과 급제한 이후 승문원가주서를 비롯하여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鶴棲文集』 20권 10책이 전한다.
수급인의 인명은 알 수 없으나, 미동으로 보낸 것으로 미루어 풍산김씨 일 것이다. 미동은 풍산김씨 11세 潛庵 金義貞(1467-1535)이 한양에서 낙향하여 세거하면서 풍산김씨 동성마을이 되었다. 풍산김씨는 대대로 서애 류성룡의 학문적 입장을 계승했고, 풍산류씨와 혼인도 빈번하게 하였으며, 향촌의 여러 가지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