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4년 8월 12일, 柳台佐가 향촌 사족의 모임에서 거론된 의견을 美洞에 알리는 편지
1834년 8월 12일에 柳台佐(1763-1837)가 향촌 사족의 모임에서 거론된 의견을 美洞에 알리는 편지이다.
얼마 전에 이별한 후 계속 서운했는데, 어제 편지를 보내와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밤새 부모님 모시는 뒤 끝에 형제분의 건강은 어떠한지 물으며, 아울러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 柳台佐는 병이 예전과 같은 상태이며, 간역하는 일은 대책이 없어 매우 답답한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달 17일 향촌 사족의 모임에서 간역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으며, 刊所의 임원을 정하는 것은 가을 향사에서 이루어져도 늦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士論에서 정해야 할 한 가지 조항도 늦추길 바란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발급인 柳台佐는 초명이 柳台祚였는데, 나중에 柳台佐로 개명했다. 본은 豊山이며 자는 士鉉, 호는 鶴棲이며,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에 抄啓文臣이 되었고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를 지냈다.『鶴棲文集』 20권 10책이 전한다.
柳台佐는 관직 생활을 마친 후 고향으로 돌아와 향촌 활동과 문중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향촌의 여론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柳台佐가 이 편지를 미동에 편지를 보낼 때도 간역하는 일에 관여한 것으로 짐작되며, 士論에서 언급된 내용을 미동에 전했다. 미동은 오늘날 오미동으로 불리며, 풍산 김씨 동성마을이다. 柳台佐가 살고 있는 하회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 풍산 류씨와 풍산 김씨는 일찍부터 혼반이 형성되었으며, 향촌 활동을 할 때도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