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4년 9월 26일, 柳台佐가 인출할 종이를 구입하는 일로 美洞으로 보내는 편지
1834년 9월 26일, 柳台佐(1763-1837)가 인출할 종이를 구입하는 일로 美洞으로 보내는 편지이다.
류이좌는 상대방의 안부와 자신의 병의 상태가 예전과 같다는 내용의 짧은 인사를 하고, 바로 상대방에게 전할 내용을 적었다. 刊行은 끝났지만 功費를 감당할 길이 없어 매우 걱정하였다. 약속한대로 書院의 하인을 보냈으며, 堂叔丈의 緬禮는 하루 남았는데 凡節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류이좌는 병든 몸으로 나아가 곡도 한번 못하고, 輓詞를 드리는 것으로 대신하니 매우 슬프고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우선, 의논드릴 일은 刊板이 만약 계속 인출하지 않아 부서지게 되면 못쓰게 되기 때문에, 從兄과 상의하여 10塊의 종이를 구입하여 인출하고자 하는데 종이를 살 방도가 어렵다고 했다. 지난번에 接所用으로 普門의 종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사용하게 될 종이의 견본을 보내니, 가격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다.
발급인 柳台佐의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士鉉이며, 호는 鶴棲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으로,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 문과 급제한 이후 승문원가주서를 비롯하여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鶴棲文集』 20권 10책이 전한다.
수급인의 인명은 알 수 없으나, 미동으로 보낸 것이다. 미동은 풍산김씨 11세 潛庵 金義貞(1467-1535)이 한양에서 낙향하여 세거하면서 풍산김씨 동성마을이 되었다. 풍산김씨는 대대로 서애 류성룡의 학문적 입장을 계승했고, 풍산류씨와 혼인도 빈번하게 하였으며, 향촌의 여러 가지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