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 10월 30일에 柳台佐가, 연보 편찬에 협조할 것과 추가할 사항을 알려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종형 柳相祚에게 보낸 편지
1832년 10월 30일에 柳台佐가, 연보 편찬에 협조할 것과 추가할 사항을 알려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종형 柳相祚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의 안부와 집안 모든 사람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뼈에 통증이 있어 다른 사람을 응접하기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 있음을 말하였다. 年譜를 改纂하는 일이 한 마음으로 정해진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여겼으며 자세한 것은 여러 사람이 回告하는 데에 달려 있지만 자신은 靑龍寺에 올라갔다가 막 修正하는 役事를 시작하는 때여서 여러 사람이 만류하여 우선 체류하고 있으며 10일 전에 돌아오기 어려운 상황을 전하였다. 이번의 모임에 여러 노인이 함께 수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한 가문에서도 찾아보는 도리가 있어야 할 것이므로 이점을 잘 헤아려 처리해 줄 것을 부탁하였고, 先蹟 중에 마땅히 넣어야 할 것이 있으면 다시 세밀히 고찰하여 알려줄 것을 부탁하며 彛好를 시켜 연락하도록 하였다.
본 편지는 예천 청룡사에서 쓴 것이며 날짜가 동지 하루 전날로 되어 있는데 1832년의 동지는 11월 1일이었으므로 하루 전은 10월 30일이다.
발급인 柳台佐(1763-1837)는, 본은 豊山이며, 자는 士鉉, 호는 鶴棲이며,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에 抄啓文臣이 되었고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를 지냈다.『鶴棲文集』 20권 10책이 전한다.
수취인 柳相祚(1763∼1838)는, 자는 爾敬이고, 호는 逸愚이다. 본관은 豊山이다. 西厓 柳成龍의 8대 종손이며, 증조는 豊陽君 柳聖和이고, 조부는 豊昌君 柳澐이다. 부는 豊恩君 柳宗春이며, 생부는 柳海春이다. 1794년 春塘臺試에 급제하였고 1820년 豊安君에 封君되었다. 1824년에 蔡濟恭의 문집을 간행했고, 1829년에는 冬至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刑曹判書를 지내고, 五衛都摠府都摠官에 이르렀다. 시호는 貞簡이다. 『燕行錄』과 『逸愚集』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