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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이병탁(李秉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832.0000-20140630.06352570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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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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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병탁, 최효술
작성시기 1832
형태사항 크기: 18.8 X 27.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소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32년 이병탁(李秉鐸) 서간(書簡)
1832년 4월 4일, 이병탁이 가학(家學) 계승을 위해 학문에 정진해 주기를 당부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의 편지를 통하여 상대의 모친께서 건강이 좋지 않고 또 천연두가 퍼져 이사를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병탁해저에서 상대방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상대가 참석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유감이라고 전하였다. 또 상대가 가학을 계승하는데 있어 그 방도를 생각하고 서책을 가까이 하여 독서와 사유를 열심히 한다면 소장부(小丈夫)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32년 4월 4일, 李秉鐸이 家學 계승을 위해 학문에 정진해 주기를 당부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32년 4월 4일에 李秉鐸(1760~1832)이 家學 계승을 위해 학문에 정진해 주기를 당부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뜻밖에 심부름꾼이 와서 상대 從叔의 편지와 상대의 편지를 한꺼번에 받고서 여러 차례 읽으니 직접 방문을 받은 것 같았다고 하였다. 편지를 읽고서 겨울과 봄에 상대 모친께서 오랫동안 건강이 좋지 못하셨고 또 천연두가 가까운 곳까지 퍼져서 모시고서 이사를 갔다는 것을 알게 되니, 상대가 겪었을 곤란과 근심을 상상할 만하다고 하였다. 이어 상대가 寓居하고 있는 仁洞(여기서는 夫仁洞을 가리키는 듯함)은 도처를 휩쓸고 있는 전염병 기운이 침투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李秉鐸 자신은 대단하게 앓고 있는 데는 딱히 없으나 스스로 생각건대 모든 상황이 몇 단계 아래로 떨어진 정도만이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허약한 체질로 인해서 스스로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겹겹으로 쌓여 있으니 염려가 크다고 하였다. 海上(海底, 곧 바래미인 듯함)에서의 緬禮 때 상대와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는데 참석하지 못한다는 상대의 편지 내용을 보고서 실망이 크다고 하였다. 상대가 仁洞에 寓居하고 있으니 先代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본래 人情과 天理로 보아 그만두려 해도 그만둘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상대가 이러한 마음에 젖어드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家聲과 家學을 계승하는 방도를 생각하여 모친을 봉양할 때를 제외하고는 쓸데없는 사람의 왕래를 물리치고 서책을 가까이 하여 독서와 사유에 열중한다면 小丈夫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하였다. 끝으로, 사탕풀[砂糖草]을 보내준 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수신자의 字가 피봉에 稚善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를 볼 때 止軒 崔孝述(1786~1870)이 수신자로 추정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32년 이병탁(李秉鐸) 서간(書簡)

稚善兄 忙謝狀。
子木弟 手帖。 謹封。
竊自歎。料外伻來。
從阮書及兄書。一齊入手。奉
讀數三。爽然如蓬藋跫音
也。謹審冬春內
萱闈氣候諐節居多。又以痘近。
奉而搬寓。困悶可想得矣 今
年此忌。到處一網。未知仁洞深
處。能終始淸淨否。鐸。別無大
段疾痛處。而自量凡節。不啻
落下幾層。蒲柳之質。不是異事。
而自家未了公案重重。是可念耳。
兒姪輩皆無臥呻之苦。而兒則待
女脕。姪則護子痘。汨沒耳。海上緬
禮時。意其可以奉際。而承示缺望
矣。高寓仁洞。俛仰感慕。自是人情天理。住不得
處。然兄不但一場感慕而止。思其所以紹家聲
而繼家學之道。視膳問寢之外。謝却閑人往來。
親近書冊。俯讀仰思。則識見大時。自家身。已不知
不覺中。亦不伏
作小丈夫矣。渠
自無一分着手
用工處。而敢開
口說如此。恐見訟
於少友也。砂糖草
惠。皆要切砂尤
緊。豈故人靈犀自通故耶。卒遽間
覓紙不得。用此短片。主戀主戀。想當恕之
也。
壬辰巳月四日。契弟。李秉鐸。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