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 4월 4일, 李秉鐸이 家學 계승을 위해 학문에 정진해 주기를 당부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32년 4월 4일에 李秉鐸(1760~1832)이 家學 계승을 위해 학문에 정진해 주기를 당부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뜻밖에 심부름꾼이 와서 상대 從叔의 편지와 상대의 편지를 한꺼번에 받고서 여러 차례 읽으니 직접 방문을 받은 것 같았다고 하였다. 편지를 읽고서 겨울과 봄에 상대 모친께서 오랫동안 건강이 좋지 못하셨고 또 천연두가 가까운 곳까지 퍼져서 모시고서 이사를 갔다는 것을 알게 되니, 상대가 겪었을 곤란과 근심을 상상할 만하다고 하였다. 이어 상대가 寓居하고 있는 仁洞(여기서는 夫仁洞을 가리키는 듯함)은 도처를 휩쓸고 있는 전염병 기운이 침투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李秉鐸 자신은 대단하게 앓고 있는 데는 딱히 없으나 스스로 생각건대 모든 상황이 몇 단계 아래로 떨어진 정도만이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허약한 체질로 인해서 스스로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겹겹으로 쌓여 있으니 염려가 크다고 하였다. 海上(海底, 곧 바래미인 듯함)에서의 緬禮 때 상대와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는데 참석하지 못한다는 상대의 편지 내용을 보고서 실망이 크다고 하였다. 상대가 仁洞에 寓居하고 있으니 先代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본래 人情과 天理로 보아 그만두려 해도 그만둘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상대가 이러한 마음에 젖어드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家聲과 家學을 계승하는 방도를 생각하여 모친을 봉양할 때를 제외하고는 쓸데없는 사람의 왕래를 물리치고 서책을 가까이 하여 독서와 사유에 열중한다면 小丈夫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하였다. 끝으로, 사탕풀[砂糖草]을 보내준 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수신자의 字가 피봉에 稚善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를 볼 때 止軒 崔孝述(1786~1870)이 수신자로 추정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