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9년 9월 28일, 從弟 柳台佐가 從兄 柳相祚에게 집안과 향촌의 여러 가지 소식을 알리는 편지
1829년 9월 28일, 從弟 柳台佐(1763-1837)가 從兄 柳相祚(1763-1838)에게 집안과 향촌의 여러 가지 소식을 알리는 편지이다.
편지의 서문은 申從편에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서, 객지에서 조섭하는 상대방의 체후가 신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을 알게 되어 걱정스런 마음을 잠시도 놓을 수 없다고 하였다. 從君輩들이 한결같아 위로가 되지만, 幽洞의 喪事는 매우 경악스럽다고 하였다. 岳深편에 보낸 편지는 곧바로 전했는지 묻었으며, 從嫂氏는 지금 유동에 있다고 하였다. 류이좌는 병을 앓고 있는 상황이 예전과 같고, 집안 모두가 평안하지만 막내 아이가 高城으로 갔다고 하니 매우 염려된다고 하였다. 무슨 내용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彛進을 본 바의 일은 삼가야 할 일이 있는지, 先儀가 첩문을 받아 올라 간 것과 그 밖에 2장의 첩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였다. 翰侄輩는 초 2일 쯤에 출발할 것이라는 소식과 繡衣[암행어사의 별칭]는 아직 머물러 있고, 順興에는 부득이하게 呈文하는 유생을 보냈으며, 안동에서는 營門으로 갔다는 소식 등을 전하였다.
발급인 류이좌는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士鉉이며, 호는 鶴棲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으로,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 문과 급제한 이후 승문원가주서를 비롯하여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鶴棲文集』 20권 10책이 전한다.
수급인은 종형 류상조로 짐작된다. 류이좌가 ‘종제’라고 표기한 편지의 대부분은 류상조에게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류상조와 류이좌는 풍산류씨 문중 활동에 앞장섰으며, 향촌 사족사회를 주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류이좌가 류상조에게 보낸 편지는 문중과 관련되거나 향촌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상의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이룬다.
류상조의 자는 爾能이고, 호는 逸愚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이며, 조부는 柳澐이다. 아버지는 柳宗春이며, 생부는 柳海春인데, 류이좌의 아버지와 형제 사이이다. 1794년 문과급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저서로 『燕行錄』과 『逸愚集』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