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3년 9월 25일, 柳台佐(1763-1837)가 從兄 柳相祚에게 蔡弘遠 令이 보낸 편지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
1823년 9월 25일 柳台佐(1763-1837)가 從兄 柳相祚(1763-1838)에게 蔡弘遠(1762~?) 令이 보낸 편지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이다.
편지의 서두는 류이좌가 객지에서 고향에 있는 형에게 일상생활은 어떠한지, 科行은 과연 모두 무사하게 돌아왔는지, 촌내도 한결같은 지 묻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류이좌는 9월 22일 저녁 燕岐 官衙에 간신히 도착하여 明侄이 오길 고대했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으며, 한양 소식 또한 다른데서 들을만한 방법이 없어 괴이하고 답답하다고 하였다. 형세 상 부득이하게 내일 새벽에 길을 떠날 계획이지만 온 뼈가 아파 먹고 마시는 것을 모두 물리친 상황이어서 매우 근심하였다. 季君이 말하길, 蔡弘遠 令의 편지가 와서 관가의 하인 편에 부쳐 보냈는데, 아직까지 그 편지를 받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채홍원의 편지 내용은 간행하는 일을 빨리 도모하여 板木을 미리 사두라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류이좌는 放免된 후에 만약 큰 구애가 없다면 마땅히 洪州로 길을 잡아 문집을 가지고 가야 할 것이고, 판목을 사는 일은 陶山의 모임을 기다리지 않고 미리 먼저 주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병산서원에 있는 돈은 반드시 빨리 독촉하고, 판목을 옮길 유생 한두 명을 정하여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떠한지 물었다. 채홍원의 편지를 집안에 보냈다고 하지만, 편지를 볼 사람이 없을 것 같으니 형께서 快貴 무리를 시켜 찾아보라고 하였다. 과거 시험에서 午人〔동서분당 당시 동인 가운데 우성전, 류성룡, 이덕형 등을 중심으로 한 당파〕은 세 명이 급제하여 기특하고 장하다고 하였다.
편지에서 언급한 채홍원은 樊巖 蔡濟恭의 아들이며, 류이좌 · 류상조 등과 1824년 안동 봉정사에서 『樊巖集』을 간행하였다. 채홍원이 판목을 미리 사두라고 극언한 것은 『번암집』에 판각에 사용될 것으로 짐작된다.
발급인 柳台佐는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士鉉이며, 호는 鶴棲이고,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 문과 급제한 이후 승문원가주서를 비롯하여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수급인은 종형 柳相祚로 짐작된다. 편지에 상대방을 ‘형’으로 표기했으며, 발급인에 ‘종제’로 표기했는데, 형 혹은 종제로 표기한 편지 가운데 상당수가 류상조에게 보냈으며, 『번암집』 간행에도 앞장섰기 때문이다. 류상조의 자는 爾能이고, 호는 逸愚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이며, 조부는 柳澐이다. 아버지는 柳宗春이며, 생부는 柳海春인데, 류이좌의 아버지와 형제 사이이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