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년 3월 24일, 制庵 鄭象履가 『愚伏先生別集』 간행과 관련하여 靑城書院의 설립연도에 대해 질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21년 3월 24일에 制庵 鄭象履(1774∼1848)가 『愚伏先生別集』 간행과 관련하여 靑城書院의 설립연도에 대해 질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聖母(孝懿王后)가 서거하여 臣民들이 모두 애통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와 멀리 헤어지니 사모하는 마음만 간절하다고 하였다. 이어 꽃피는 계절에 상대의 體候가 한결같이 평안하고 자제분들도 건승한지 안부를 물었다. 또 淸安의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俛齋 李秉運의 근황은 어떠하며, 그 어버이께서 이미 행차하셨는지 물었다. 淸河公(所庵 李秉遠)이 지난봄에 이 마을로 들어왔다가 자신을 보지도 않고 떠났다고 하면서, 그가 자기와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미워하는 세속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한 듯하고 그의 도량이 넓지 못함을 또한 보았으니, 아직까지도 마음속에 걸린다고 하였다. 그가 돌아가서 觀賞玩味하는 공부가 날마다 진취하고 있는지 묻고, 일상생활 속에서 필시 강론하고 익히는 즐거움이 있을 터인데 자신은 나가자니 타고 갈 당나귀가 없고 궁벽한 산중에서 쓸모없이 지내고 있어서 늘 나아가 가르침을 듣고는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鄭象履 자신은 谷口(鄭象履의 再從弟인 鄭象觀)가 사망한 날이 이렇게 되돌아와서 이르는 곳마다 痛惜한 마음이 생기니 참으로 죽은 이를 되살릴 수 없어 드는 애통한 마음이 든다고 하였다. 先祖의 別集(愚伏 鄭經世의 『愚伏先生別集』)을 간행하는 일을 여러 해 동안 경영하던 끝에 이제 막 板刻하고 있는데 事蹟 가운데 靑城書院의 創設 年條에 대해 고찰해봐야 하는 일이 생겼다고 하면서, 자세하게 조사하여 龜湖로 가는 인편을 찾아서 편지를 부쳐 보내어 자신이 고증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끝으로, 仲芝(李㙖의 손자 龍庵 李秀三)가 아직까지 功城(상주에 있는 지명)에 있느냐고 묻고 전염병으로 사방이 막혀서 그의 소식을 들어 알지 못하니 답답하다고 하였다.
鄭象履는 尙州의 晉陽鄭氏 문중 학자로서 退溪와 西厓, 愚伏으로 이어지는 학맥을 계승하였으므로 屛論에 속한 인물이다. 따라서 淸河縣監에 임명되었던 李秉遠과 우호적인 교류를 맺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편지에서도 그러한 일면이 잘 드러나 있다. 또 晉陽鄭氏 문중은 尙州 지역에 세거하고 있던 修巖 柳袗의 후손들인 豊山柳氏 문중의 반대를 무릅쓰고 『愚伏別集』의 간행 작업을 추진하였는데, 여기서 靑城書院에 대해 자문을 구한 것은 安東의 士林이 鶴峯 金誠一과 松巖 權好文을 靑城鄕社에 幷享하려고 하면서 그 位次에 대해 愚伏 鄭經世에게 편지를 보내어 질의한 일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