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0년 1월 15일, 從弟 柳台佐가 지방관에 부임하는 從兄 柳相祚에게 보내는 편지
1820년 1월 15일, 從弟 柳台佐(1763-1837)가 지방관에 부임하는 從兄 柳相祚(1763-1838)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류상조와 헤어진 뒤에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었는데, 그가 지방관으로 부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여 근심스럽기도 하지만 망극하다고 하였다. 지방관은 백성과 사직에 대한 책임이 가볍지 않고, 아랫사람을 돌보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관직에 있는 자가 가장 꺼리는 것은 너그럽고 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하물며 해당 읍은 원래부터 수령의 자리에 무관이 임명되는 자리이니, 고을의 풍속이 사나울 것이라고 하였다.
지나가는 길에 고향에 들러 하루 저녁 머무는 것이 어떠한지 물었다. 류이좌는 병으로 아직 고생하고 한양 소식이 오랫동안 막혀, 체직을 알지 못하여 매우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영남지역의 편지는 상대편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이 편지의 경우 가깝게 지내는 종형에게 보내는 것으로 형식적인 안부인사가 생략된 편이다.
발급인 柳台佐의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士鉉이며, 호는 鶴棲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으로,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 문과 급제한 이후 승문원가주서를 비롯하여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수급인 류상조의 자는 爾能이고, 호는 逸愚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이며, 조부는 柳澐이다. 아버지는 柳宗春이며, 생부는 柳海春인데, 류이좌의 아버지와 형제 사이이다. 1794년 류이좌와 함께 문과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저서로 『燕行錄』과 『逸愚集』이 전한다.
풍산류씨 화경당에는 류이좌가 개인적인 고민, 문중 활동과 관련된 일, 향촌의 여러 가지 사안 등으로 류상조와 주고받은 편지가 상당수 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