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4년 3월 12일, 從弟 柳台佐가 從兄 柳相祚에게 轎子를 보내는 것과 수의와 관곽을 구하는 문제 등을 알리는 편지
1814년 3월 12일, 從弟 柳台佐(1763-1837)가 從兄 柳相祚(1763-1838)에게 轎子를 보내는 것과 수의와 관곽을 구하는 문제 등을 알리는 편지이다.
숙모주의 기후가 어떠하고, 부모님을 모시는 여가에 조리하시는 체후 역시 어떠하며, 각 집안들도 여전한지 등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편지가 시작된다. 류이좌는 아버지의 환후가 여전히 오래도록 낫지 않아 연이서 湯劑를 썼는데, 근력이 크게 떨어져 전혀 뚜렷한 효험이 없으니, 고민된다고 하였다. 관청의 일은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다소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일이 한둘이 아닌데도 이렇게 보내니 참으로 탄식할 만하다고 하였다.
轎子를 다시 보내라고 하여 보내며, 수의와 관곽은 여기서 구하겠지만, 만약 구하지 못하면, 마땅히 운반해 오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였다. 國은 이미 병이 나았기 때문에 장차 집 근처 사찰에 보내려고 하지만, 염려할 만한 것이며, 文議를 내려오도록 하고, 조카 明에게는 지시를 받고 오도록 하길 바라는 내용이다.
추신 가운데 일부는 글자를 알 수 없지만, 대강 각처로 가는 물품을 조카 寬으로 하여금 자세히 조사해서 전달하길 바라는 내용이다.
발급인 柳台佐의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士鉉이며, 호는 鶴棲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으로,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 문과 급제한 이후 승문원가주서를 비롯하여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수급인 류상조의 자는 爾能이고, 호는 逸愚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이며, 조부는 柳澐이다. 아버지는 柳宗春이며, 생부는 柳海春인데, 류이좌의 아버지와 형제 사이이다. 1794년 류이좌와 함께 문과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저서로 『燕行錄』과 『逸愚集』이 전한다.
풍산류씨 화경당에는 류이좌가 개인적인 고민, 문중 활동과 관련된 일, 향촌의 여러 가지 사안 등으로 류상조와 주고받은 편지가 상당수 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