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3년 4월 15일, 寒坪 柳晦文이 柳魯文의 부인이 사망한 것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
1813년 4월 15일에 寒坪 柳晦文(1758~1818)이 柳魯文의 부인이 사망한 것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柳魯文의 부인인 韓山李氏가 사망한 瓢谷의 喪事에 대해서 깊은 슬픔을 표하였다. 그녀의 사망은 자신의 집안 운수가 박복한 것이며, 여러 대의 祭祀를 주관할 이가 없어지게 된 것이라고 하면서, 더욱 애통한 심정을 표하였다. 피차 연로하신 어버이를 모시고 있는 데다 온 집안에 어린아이들이 가득한 상황이니 더욱 참혹한 실정이라고 하였다. 그녀의 純和한 덕성에 비추어 장래에 받게 될 복록이 무궁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갑자기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하였다. 이어 우애가 지극하여 애통해 할 상대와 가슴 아파하실 늙으신 어버이의 심경을 생각하니, 여러모로 기가 막힌다고 하였다. 아이가 돌아온 편에 상대의 답장을 받고서 還官하자마자 또 창망하게 歸覲하였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애통한 와중에 건강이 손상되지는 않았는지 안부를 물었다. 또한 本第의 모든 상황이 어떠한지도 물었다. 仲氏와 季氏는 어버이 곁을 떠나서 瓢谷으로 오기 어려울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고 韓山李氏가 전염병으로 사망한 만큼 注書도 들어와서 곡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도 못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끝으로, 宣則 柳魯文이 부인상을 당하여 병세가 악화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말할 수 없을 만큼 염려가 된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상대가 보내준 물건을 잘 받았다고 하면서 묘소를 쓰는 役事가 전개되어 만약 부족한 문제가 생기게 되면 추후에 다시 청하겠다고 하였다.
柳晦文은 大山 李象靖의 孫壻이자 艮巖 李埦의 첫째사위이다. 柳星休의 아들이면서 嶺南의 대학자인 定齋 柳致明의 부친이다. 李埦의 둘째사위가 柳魯文인데, 그와 그의 부인인 韓山李氏 모두 이해에 사망하였고, 韓山李氏는 4월 13일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