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년 3월 18일, 從弟 柳台佐가 집안의 여러 가지 사정을 從兄 柳相祚에게 알리는 편지
1812년 3월 18일, 從弟 柳台佐(1763-1837)가 집안의 여러 가지 사정을 從兄 柳相祚(1763-1838)에게 알리는 편지이다.
편지는 하인이 돌아오는 편에 상대방의 편지를 받아서 조섭하는 가운데 기거하는 안부가 한결같고, 翼侄의 병에 더친 것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되어 위로가 된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에는 홍경래의 난과 관련된 내용이다. 서쪽 賊徒[홍경래의 난]들이 아직 깨끗이 소탕되지 못했으니, 밤낮으로 분하고 답답한 마음을 말로 형용할 수 없으며, 홍경래의 난에 가담한 朴鍾一 무리를 推鞫하는 일이 생겼다고 하였다.
류이좌는 朝報가 오지 않아 매우 답답해하며, 監營에서의 戒嚴은 엄히 신칙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부모님과 숙모님의 기후가 한결 같으나, 마을의 돌림병은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고 하였다. 學兒의 혼사는 日家가 모두 20일은 안된다고 하기에 24일로 늦추었으며, 殷叟가 사람을 보내는 일은 좋은 하교가 있었다고 하고, 龍兒의 혼사도 어느 한 곳에서부터 소문이 들어가 먼저는 허락했다가 뒤에 후회한다고 하였다. 溪上의 편지에서 염려하지 말라고는 하나 행여 成禮할 수 있을지 걱정하였다. 큰집의 일은 오랫동안 염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奴는 완악하고 婢는 나태하여 타인이 警責할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하였다. 産婦는 이제 염려놓을 만하다고 전하였다. 한 노인이 그저께 龍宮에 醫員을 찾아가는 일로 하루를 머물고 갔는데, 그의 병이 심상치 않다고 하였다. 학아의 禮狀은 형님의 분부대로 따랐으니, 豊基에서 택일하여 데리고 가고자 하고, 床答 등의 절차도 그곳에서 헤아려 볼 수 있으나, 이 아이가 순종하지는 않을 것 같아 매우 가련하고 고민된다고 하였다. 추신의 내용은 小紙에서 가르쳐주신 글의 뜻은 은수의 편지 안에 아마 필시 자세히 고해주었을 것으로 보이나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급인 柳台佐의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士鉉이며, 호는 鶴棲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으로,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 문과 급제한 이후 승문원가주서를 비롯하여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수급인 류상조의 자는 爾能이고, 호는 逸愚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이며, 조부는 柳澐이다. 아버지는 柳宗春이며, 생부는 柳海春인데, 류이좌의 아버지와 형제 사이이다. 1794년 류이좌와 함께 문과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저서로 『燕行錄』과 『逸愚集』이 전한다.
풍산류씨 화경당에는 류이좌가 개인적인 고민, 문중 활동과 관련된 일, 향촌의 여러 가지 사안 등으로 류상조와 주고받은 편지가 상당수 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