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년 2월 24일, 從弟 柳台佐가 從姪婦의 순산, 學兒와 龍兒의 혼사와 관련하여 從兄 柳相祚에게 보내는 편지
1812년 2월 24일, 從弟 柳台佐(1763-1837)가 從姪婦의 순산, 學兒와 龍兒의 혼사와 관련하여 從兄 柳相祚(1763-1838)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봄 날씨가 온화한데, 조섭하시는 가운데 기거생활은 어떠하시며, 翼侄의 병은 어떠하며, 서쪽에서 일어난 경계할 만한 일[西警; 홍경래의 난]은 이미 평안해졌는지 물었다. 류이좌는 부모님 모시고 사는 일은 우선 예전 그대로이고, 從姪婦는 22일 새벽에 順産하였지만 아들을 바라던 것에는 부응하지 못하여 탄식스러우며, 雜症은 없으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良洞宅의 아이들과 婢僕들이 차례로 질병에 걸리니 위험하고 두렵다고 하였으며, 學兒는 다음달 4월 상간에 成禮를 할 것이며, 龍兒의 혼사는 新谷의 張錫慶의 집으로 정해져서 3월내에 성례를 할 것이나 床新行을 한다고 하니 범절이 매우 군색하여 고민된다고 하였다. 이 집안은 비록 부유한 집안은 아니나, 빈부를 가릴 처지가 아니고, 문벌은 합당하여 다행으로 여겼다. 용아의 혼인은 아마도 3월 13일 상간에 지낼 것 같기에 부득이한 것은 흥정을 하되, 이곳에서부터 推移한 돈 10냥을 李鼎垕에게 부쳐 보내어 그로 하여금 흥정하여 보내게 했으니, 이 흥정은 잠시라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하인 1명을 그곳에서부터 한양으로 보내어 추심하여 이곳으로 전해달라고 하였으며, 학아의 婚具도 그 편에 보내는 것이 매우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별지에서 분부하신 것은 우선 마땅히 그대로 해드려야 하나, 중개인을 명한 일은 이미 所志를 올렸는데, 잘 헤아려 頉給하라는 題辭가 있었다고 하지만, 習陣 할 때 이루지 못한다면 아마도 사람을 대신 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발급인 柳台佐의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士鉉이며, 호는 鶴棲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으로,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 문과 급제한 이후 승문원가주서를 비롯하여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수급인 류상조의 자는 爾能이고, 호는 逸愚이다. 西厓 柳成龍의 7대손이며, 조부는 柳澐이다. 아버지는 柳宗春이며, 생부는 柳海春인데, 류이좌의 아버지와 형제 사이이다. 1794년 류이좌와 함께 문과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저서로 『燕行錄』과 『逸愚集』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