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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 류한조(柳漢祚)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807.4717-20140630.063525700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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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한조, 이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07
형태사항 크기: 40.1 X 32.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소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7년 류한조(柳漢祚) 서간(書簡)
1807년 2월 17일에 류한조가 문집 간행과 관련하여 항의의 뜻을 표하기 위해 이우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에게 문집에서 발생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류이좌의 일기를 이해해야 하며 당신께서 왜 자신을 견책했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있다. 또한 서로 나이가 많으니 공경하는 것이 도리이며 자신은 4,5일 뒤에 사촌으로 갈 것이고 이 일은 한번 웃고 치울 것이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807년 2월 17일에 柳漢祚가 문집 간행과 관련하여 항의의 뜻을 표하기 위해 俛庵 李㙖에게 보낸 편지
1807년 2월 17일에 柳漢祚가 문집 간행과 관련하여 항의의 뜻을 표하기 위해 俛庵 李㙖(1739~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전반적으로 古人들이 편지에서 잘 쓰지 않는 원색적인 표현들이 많은데, 당시 屛虎 兩論 간의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발신자인 柳漢祚는 돌림자로 보건대 屛論인 豊山柳氏 인물이 확실해 보이며, 편지에서 刻手 운운한 것으로 보아 文集 간행을 둘러싸고 虎論인 李㙖와 마찰을 빚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屛虎 兩論이 함께 추진한 文集 간행 사업이라면 19세기 초반에 추진된 樊巖 蔡濟恭의 문집인 『樊巖集』 간행 사업을 떠올릴 수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임노직의 「『樊巖集』 판각 경위와 문화사적 의미」에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이 편지의 구체적인 스토리는 이 刊役에 대한 鶴棲 柳台佐 소장본의 각종 일기 자료를 일람해야 이해할 수가 있다. 대체로 柳漢祚는 刻手들이 버티고 있는 일에 대해서 李㙖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자신에게 보낸 편지에서 李㙖가 온통 자신을 견책하고 있는데 이는 操存 공부를 온전히 버린 것이 아니냐고 하였으며, 도리도 모르고 사리도 모르며 성을 낸다는 등의 말은 자신에게 그래도 藥石이 되는 말이지만 ‘使’ 자에 대한 부분은 이런 식으로 자신을 責善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또 이것이 어찌 70 줄의 사람들이 서로 공경하는 도리이겠느냐고 하였다. 끝으로 자신을 허물하거나 꾸짖지 말라고 하였고, 일을 끝내고 돌아갔다가 4, 5일 뒤에 沙村으로 가려고 하니 그저 한 번 웃고 치울 것이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7년 류한조(柳漢祚) 서간(書簡)

蘇湖書堂執事。
陵齋弟謝狀。 謹封。
郵奴還。卽承
惠覆。謹審風寒
尊體動止有欠安節。不勝仰慮之至。
僅保昨狀。而食言之說。弟之自道。美洞違約也。
刻手相持之事。
何數次張皇說去。備盡心氣筆力也。初頭
發牌之。欲探得事實。而僧無刻手空
坐。而受書以送者。果有主事諸兄。盡善
應事面。而書中除却付板等。辭意未免
爽實。故更差捉致計。而兼修相議之書矣。
來覆中。滿紙譴責。無所不至。如我燥率。無足
怪也。而亦未盡除却於操存用工地耶。末乃
昧道理昧事理盛氣等敎。在俱爲藥石之
言。而至於使之一字。是不能者。所以使也。責善之道。
恐不當如是。而又豈七十人相敬之道耶。使觀之。
亦未免責人明也。大抵元僧初牌來現。
則不過爲責其心術之用。而第問某冊之某板而已。
而主事員橫當。上及七耋老人。致此光景。
盛氣於元僧。而則盛氣於則使能而刻手。而
則使能於刊役。使氣使能。俱未免勝而負。
望須休咎而休責焉。自此畢役而歸。四五日後。欲往
計。當一笑而已。餘。不宣
狀儀。
丁卯二月十七日。弟。柳漢祚。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