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년 3월 29일에 柳台佐가 官敎를 이조 아전을 통해 부쳤음을 알리기 위해 朴光錫에게 보낸 편지.
1807년 3월 29일에 柳台佐가 官敎를 이조 아전을 통해 부쳤음을 알리기 위해 朴光錫에게 보낸 편지이다.
전에 보낸 편지를 보았는지와 상대방의 안부를 궁금해 하였다. 자신은 근래 臺職으로 옮기고 아울러 시험을 관리하는 일로 지난날의 병이 배로 심해져 날로 노곤하게 지내는데 고향의 편지도 또 막혔으니 답답함을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번의 大小科에 嶺中에서 합격한 사람이 적은데 李賢黙, 李同淳, 黃贊熙, 梁在孟, 徐承烈이 합격하였다고 전하였다. 官敎 1장을 이조 아전에게 부쳐 올렸다고 전하며 받아들이기를 바라였다. 重吉이 근래 典設司 別檢으로 바뀌었고 佐郞 尹東壽가 새로 栢府의 의망을 통과했음을 알렸다.
발급인 柳台佐(1763-1837)는, 본은 豊山이며, 자는 士鉉, 호는 鶴棲이며,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에 抄啓文臣이 되었고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를 지냈다.『鶴棲文集』 20권 10책이 전한다. 이때 당시 司憲府 司成을 지냈다.
수취인 朴光錫(1764∼1845)은 본은 順天. 자는 仲益, 호는 老圃이다. 1795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1805년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고, 부교리·동부승지·호조참의 등을 역임하고 안변부사가 되었다. 그 뒤 副摠管同知義禁府經筵特進官 등을 역임하였다. 1819년 蔡濟恭의 신원을 주장하였다.『老圃文集』이 있다.
1차 작성자 : 김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