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년 2월 20일, 金熙郁이 사돈인 李秉鐸에게 보낸 편지
1807년 2월 20일에 金熙郁이 사돈인 李秉鐸(1760~1832)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秉鐸이 보내준 편지를 읽고, 色憂(부모님의 병환)가 점점 쾌차되어 가고 있고 李秉鐸이 건승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다만 風鳴症은 노쇠에 따른 증상 가운데 하나이므로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金煕郁 자신은 어버이의 건강이 다행히 괜찮으시고 자신의 병도 조금 괜찮아지고 있으나 喘症이 아직 없어지지 않고 있기에 매우 고통스럽다고 하였다. 이어 자신의 딸이 무엇 때문에 식욕이 부진하여 수척하게 되었는지 묻고, 딸이 가지고 있는 병도 무슨 증상인지를 모르니 한층 걱정되고 가련하다고 하였다. 근자에 병을 앓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돌림병이 유행하고 있는데, 딸도 마찬가지로 돌림병에 걸려서 그런 것은 아닌지 우려하였다. 천연두 기운이 가까운 곳까지 침투하였다고 하므로, 李秉鐸을 위해서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한 번 찾아가 회포를 푸는 것은 李秉鐸의 초대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지만, 어버이를 모시고 있는 상황에서 몸을 빼내기가 매우 쉽지 않고 거듭 생겨나는 우환거리가 몸을 얽어맸기 때문에 차질이 생겨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차후에 틈이 난다면 도모해 보겠다고 하였다. 査丈(李秉鐸의 부친인 俛庵 李㙖)이 지난번에 溪院에 辭職單子를 올린 일은 자신을 매우 놀랍게 했다고 하였다. 原任이 享禮를 대신 거행하는 것은 본래 溪院의 舊例이고 올렸던 辭職單子들을 書院 측에서 모두 물렸던 상황을 거론하면서, 다시 辭職單子를 올린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하였다. 이곳의 物議가 이와 같다는 것을 李秉鐸이 査丈에게 말씀드려 달라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황망하여 査丈께는 편지를 써서 보내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죄송스럽다고 하였다.
발신자인 金煕郁의 딸인 義城金氏가 李秉鐸의 아들인 李秀賢과 혼인하였으므로, 金煕郁과 李秉鐸은 서로 사돈지간이 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