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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 류한조(柳漢祚)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807.0000-20140630.063525700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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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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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한조
작성시기 1807
형태사항 크기: 35 X 41.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소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7년 류한조(柳漢祚) 서간(書簡)
1807년 2월 15일에 류한조가 각수를 확보하는 문제를 상호 조율하기 위해 고산서원 측에 보낸 편지이다. 류한조는 재사에서 족보를 간행하고 있는데, 족보의 경우에는 세자(細字) 주각(註脚)이 선조의 성명 아래에 들어가기 때문에 좋은 각수가 아니면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문집의 경우에는 모두 1행이 단자(單字)로 되어 있는데, 고산서원 측에서 좋은 각수들을 독점하여 자신들로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 하였다. 고산서원 측에서는 물량이 1권에 불과하고 이쪽은 5권이나 되는 거질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5일 정도 각수를 이쪽에 빌려 줘서 먼저 최초 1권과 2권의 세자 쌍행(雙行)을 새기게 한 뒤에 자신이 각수들을 되돌려 보내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의향을 물었다. 이렇게 하면 고산서원 측에서는 5, 6일 정도만 지체될 것이라고 하고 수곡에서 추진하고 있는 간행 사업에도 지장을 주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효심

상세정보

1807년 2월 15일, 柳漢祚가 刻手를 확보하는 문제를 상호 조율하기 위해 高山書院 측에 보낸 편지
1807년 2월 15일에 柳漢祚가 刻手를 확보하는 문제를 상호 조율하기 위해 高山書院 측에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당시 安東의 屛虎 양쪽이 木板 제작을 통한 서책 간행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였는데 양질의 刻手가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서로 간에 刻手를 놓고 분쟁이 야기되기도 하였음을 살필 수 있게 한다. 먼저, 柳漢祚는 齋舍에서 族譜를 간행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피차간에 간행하는 일이 서로 겹치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라고 하였다. 刻手가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서책 간행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柳漢祚는 族譜의 경우에는 細字 註脚이 선조의 성명 아래에 들어가기 때문에 좋은 刻手가 아니면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文集의 경우에는 모두 1行이 單字로 되어 있는데 高山書院 측에서 좋은 刻手들을 독점적으로 확보해 버린다면 자신들로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 하였다. 高山書院 측에서는 물량이 1卷에 불과하고 이쪽은 5卷이나 되는 巨帙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5일 정도 刻手를 이쪽에 빌려 줘서 먼저 최초 1卷과 2卷의 細字 雙行을 새기게 한 뒤에 자신이 刻手들을 되돌려 보내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의향을 물었다. 이렇게 하면 高山書院 측에서는 5, 6일 정도만 지체될 것이라고 하고 水谷에서 추진하고 있는 간행 사업에도 지장을 주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高山書院 측에서 추진하고 있는 간행 사업은 士林 전체의 공공적 성격을 띤 것이고 자신들의 族譜 간행 사업은 한 문중의 사적인 성격을 띤 데 불과하다고 하면서, 자신이 사적인 일을 우선하여 공공성을 해치는 죄과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편지에는 승려 圓敏을 問罪하는 일과 이와 관련하여 柳漢祚가 牌子를 작성하였던 일 등이 상세히 언급되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미상이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7년 류한조(柳漢祚) 서간(書簡)

高山僉老兄 執事案下。
陵齋 柳弟 謝狀。 謹封。
龜潭兄積歲違晤。寢郞兄頃留追敍之約。而
未免食言。仰溸且愧。今承
先問俯札。不勝感荷。謹審春煦
僉履節宣。加護珍衛。仰慰區區。弟。方以族譜刊役事。來
留墳庵。而日事撓惱。無足仰聞。第刊工之彼此相値。不足
異事。而大抵郵中事狼貝。未知何以爲之。各處通奇。或在四
五百里及百數里外。而使之期會進處。則猶可容旋。而遠無變
通之路。且譜中細字註脚。皆在祖先姓諱下。非善刻。則無
以容刀。而彼圓敏僧。非不知此中事勢。而抄納善納善刻
者。難免忌妬之罪。故捉問者。良以此也。又況卄七卷大文。集已
成。則弟之此擧。豈誠薄於高山刊役而然哉。弟之作牌。以出牌
之先後者。蓋爲圓敏僧問罪之案。而俯示中除却先後較
計之論者。誠淺知之也。弟雖無似。未嘗當局。而迷於此於彼。豈
無公私闊狹之路。而第念文集。俱是一行單字書。譜役。則許
多雙刻細字。貴中若抄執善手。則其將無如之何。且聞
貴中不過一卷。而此則五卷大篇也。境內刻手三四十若盡付。
則十日之役。可斷於三四日。而水谷刊役。私通來付。到處刻手。此中費盡。各
樣許多物事。而將待何日也。且聞貴所。無一刻手之來。而俯示中有付板
數日之敎。無乃主事諸兄。誤稟在家父兄而然耶。姑無始事。則借以
五日。使之先刻初二卷細字雙行。然後弟當先選貴邊抄執十名。則
其間進退。不過五六日。未知盛意以爲如何。若然則彼▣▣▣▣▣。
不妨於水谷事矣。近來此等事。
每每相値。而顧此老弟。不幸受父兄之
託。而難與鄕中當日做事少年。
較其短長。且鄙門事。不過一室
之私。而高山事。卽士林公共之役
也。弟豈敢自歸循私蔑公之科。而
如是縷縷煩溷耶。餘。早晩當奉敍耳。不宣。伏惟
下照。謹謝上狀。
丁卯二月十五日。弟。柳漢祚。拜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