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1월 15일에 金原進 등이 俛庵 李㙖가 유배를 가게 된 일과 관련하여 그 아들인 李秉鐸에게 보낸 편지
1806년 1월 15일에 金原進 등이 俛庵 李㙖가 유배를 가게 된 일과 관련하여 그 아들인 李秉鐸(1760~1832)에게 보낸 편지이다.
어제 편지를 받았는데 李㙖가 유배를 가게 되었다는 소식은 과연 이것이 무슨 厄運이냐고 하면서, 자신들은 듣고서 매우 놀라고 두려워 밤새도록 잠도 자지 못했는데 이 일이 한 집안과 관련된 것이니 만큼 어찌 이러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이어, 羅吏가 도착하였는지 물었다. 李㙖는 평탄하건 험난하건 간에 한결같으니 필시 근심하시지 않을 테지만, 늘그막에 섬에서 유배살이를 하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바가 있으니, 모시는 李秉鐸의 입장에서 그 애타고 근심스런 심정이 어떠하겠느냐며 위로하였다. 그러나 한 번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리가 없고 李㙖의 건강 상태가 아직 왕성하시니 그렇게 두려워할 것까지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출발은 언제 하느냐고 묻고, 行具 등을 갖추는 데에 두서가 없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자신들이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配所로 갈 때 탈 말을 입수하였는지 묻고, 집에 있는 말을 집안사람이 빌려서 永川으로 떠났기 때문에 끌고 가지 못하니 안타깝다고 하였다. 지금 觀이를 보내니 떠나는 날짜를 알려 주면 자신들이 가서 근심을 함께 나눌 계획이라고 하였다.
李㙖는 正祖代에 思悼世子 伸寃 上疏의 疏頭로 활약한 일을 계기로 懿陵參奉에 임명된 바 있고 또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해 1월에 康津縣 古今島로 유배를 갔다가 4월에 방면된 바 있다. 이는 正祖 사후 貞純王后 주도의 老論 一黨 체제가 확립되면서 英祖代의 壬午義理에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다시금 탄압하였던 정국과 관련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