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2월 27일, 庶內從祖인 李東煥이 古今島로 유배를 간 일과 관련하여 俛庵 李㙖에게 보낸 편지
1806년 2월 27일에 庶內從祖인 李東煥이 古今島로 유배를 간 일과 관련하여 俛庵 李㙖(1739~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李東煥은 자신이 병으로 거의 죽어가던 상황에서 1월 19일에 李㙖가 유배를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매우 놀랐다고 하였다. 자신의 병세가 크게 위중하여 아이들이라도 대신 보내서 작별하게 하고 싶었으나 이미 李㙖가 출발하였음을 알게 되었고 또 자신의 병세가 그와 같은 와중에 아이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고 하였다. 또 지금까지 편지도 보내지 않았던 데 대해, 이 역시도 속으로 앓던 병이었다고 하였다. 며칠에 유배지로 도착하였는지 묻고, 전라도는 瘴氣가 많은데 康津만은 조금 괜찮다는 얘기를 평소 들었다고 하면서 이 말이 정말로 맞는지도 물었다.
이어 지난 초겨울부터 죽을 고비에 이르렀을 정도로 좋지 않았던 자신의 병세에 대해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스스로의 근력을 생각해 보건대 李㙖의 얼굴을 다시 보지도 못하고 장차 죽게 되었다고 하면서 통절하게 한스러운 마음을 표하였다. 그러나 임금의 노여움은 단기적인 것이고 또 근래 서울 소식을 들어보건대 조금 마음이 놓이는 부분도 있었으니, 李㙖가 장기적으로 유배에 처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李㙖가 스스로 保重함으로써 우러러 사모하는 士友들의 마음에 부응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끝으로, 殷谷의 權 생질이 宿病으로 이달 21일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추신에서는, 1緡銅을 약소하나마 보내니 몇 달 동안의 요기 밑천으로 사용하라고 하였다.
李㙖는 正祖代에 思悼世子 伸寃 上疏의 疏頭로 활약한 일을 계기로 懿陵參奉에 임명된 바 있고 또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해 1월에 康津縣 古今島로 유배를 갔다가 4월에 방면된 바 있다. 이는 正祖 사후 貞純王后 주도의 老論 一黨 체제가 확립되면서 英祖代의 壬午義理에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다시금 탄압하였던 정국과 관련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