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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김제운(金濟運)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806.4717-20140630.063525700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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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제운, 이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06
형태사항 크기: 46 X 36.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소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6년 김제운(金濟運) 서간(書簡)
1806년 5월 6일에 김제운고금도로 유배를 갔던 일과 관련하여 이우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유배에서 풀려난 것을 축하하며 영남의 큰 다행이라고 하고 있다. 이어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이 나가서 당신을 맞이해야 되나 말과 종을 구하지 못해 그 뜻을 이루지 못해 아쉽다고 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806년 5월 6일에 金濟運古今島로 유배를 갔던 일과 관련하여 俛庵 李㙖에게 보낸 편지
1806년 5월 6일에 金濟運古今島로 유배를 갔던 일과 관련하여 俛庵 李㙖(1739~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解配되어 남쪽으로 내려오는 李㙖가 험한 길을 무사히 오고 尊年에 건강 상태가 예전보다 더욱 좋다는 것을 얼핏 들으니 李㙖가 평소 充養한 바가 있었던 것쯤이야 본디 알고 있었으나 친근하게 지낸 사람들은 서로 크게 기뻐했다고 하였다. 정치적 義理가 다시 천명되고 국왕의 은혜가 그지없으니, 우리 嶺南 사람들의 감격은 더욱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였다. 이어 李㙖가 먼 길을 달려온 뒤에 건강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안부를 물었다. 金濟運 자신은 몸소 나아가 解配를 축하드려야 마땅하지만 말과 종을 구하기 어려워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였다. 지금은 형님이 갈 때 함께 가지 못하였으니, 매우 서글프고 안타깝다고 하였다.
참고로, 李㙖는 正祖代에 思悼世子 伸寃 上疏의 疏頭로 활약한 일을 계기로 懿陵參奉에 임명된 바 있고 또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해 1월에 康津縣 古今島로 유배를 갔다가 4월에 방면된 바 있다. 이는 正祖 사후 貞純王后 주도의 老論 一黨 체제가 확립되면서 英祖代의 壬午義理에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다시금 탄압하였던 정국과 관련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6년 김제운(金濟運) 서간(書簡)

老兄。謹拜賀狀。
李參奉執事。 省式謹封。
省式。向來南爲光景。不必進唁。仄聞
南旆利涉風波。尊年髭髮勝
昔。固知充養有素。而親知相慶
當何如也。義理復明。
天恩罔極。吾之感泣。尤不可盡喩。
不審遠路馳驅之餘。
尊履得無損節否。瞻溯區區。濟運
卽當躬造而賀。而蹄指俱艱。末
由遂意。今於家兄之行。又未能聯
鑣。深庸悵歎。餘。在早晏面敍。不
備。伏惟
下照。謹拜候狀。
丙寅五月初六。服弟。金濟運。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