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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권동범(權東範) 외2명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806.4717-20140630.063525700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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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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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권동범, 권동설, 권동진, 이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06
형태사항 크기: 50.8 X 3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소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6년 권동범(權東範) 외2명 서간(書簡)
1806년 3월 10일에 권동범 등이 고금도로 유배를 간 일과 관련하여 이우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당신의 유배 소식을 듣고 놀랐으며 잘 지내고 계신지를 묻고 있다. 이어서 유배 가는 날 전별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끝으로 몸 조심히 지내시라는 말을 전하고 돈 얼마를 보낸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806년 3월 10일에 權東範 등이 고금도로 유배를 간 일과 관련하여 李㙖에게 보낸 편지
1806년 3월 10일에 權東範 등이 古今島로 유배를 간 일과 관련하여 俛庵 李㙖(1739~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에 李㙖가 유배를 가게 되었던 일은, 자신들이 소식을 듣고서 더없이 두려웠다고 하였다. 더구나 궁벽한 바다의 적막한 곳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바가 아닌 좋지 못한 환경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고 하였다. 이어 유배지로 평안하게 도착하였으며, 유배지에서 건강이 나빠지지는 않았으며, 풍토 및 기후가 그다지 심하게 다르지는 않으며 일상생활도 평온한지 안부를 물었다. 李㙖가 평소 가학을 통해 얻은 소양이 넉넉하니, 환란에 대처하는 자세가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더구나 우리 嶺南의 義理는 天地를 지탱하고 古今에 뻗어 있어서 소멸된 적이 없고 天運은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니, 李㙖가 조만간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權東範 등은 田圃에 칩거하고 있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병이 더욱 심해져서 조금도 세상사는 재미가 없으니, 스스로 걱정스럽고 가련하다고 하였다. 또한 李㙖가 사는 곳과 거리가 멀어서 유배 소식을 바로 듣지 못하였던 관계로 李㙖가 유배지로 출발하던 날에 직접 전별하지 못했고 또 李㙖가 유배지에 있는 상황에서 서신으로나마 대신 안부를 묻지 못한 데 대해, 부끄럽고 죄송스런 마음을 표하였다. 끝으로, 李㙖가 自重自愛하여 자신들의 정성에 부응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추신에서는, 2緡銅을 보낸다고 하였다.
참고로, 李㙖는 正祖代에 思悼世子 伸寃 上疏의 疏頭로 활약한 일을 계기로 懿陵參奉에 임명된 바 있고 또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해 1월에 康津縣 古今島로 유배를 갔다가 4월에 방면된 바 있다. 이는 正祖 사후 貞純王后 주도의 老論 一黨 체제가 확립되면서 英祖代의 壬午義理에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다시금 탄압하였던 정국과 관련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6년 권동범(權東範) 외2명 서간(書簡)

向來
遷謫。聞不勝惶懍萬萬。況窮海寂寞之
濱。決非人所堪者乎。不審蒼黃
行李平安抵達。
謫中動止。別無添損否。風土氣候。不至甚異。
而居處飮食。亦能平穩否。竊想平日所得

家庭者。綽乎有裕。其所以修身俟命。隨遇安分。
不以險艱。而有所隕穫。矧且吾義理。撑天
地亘古今。而未嘗泯滅。天運無往不復。
聖明終當俯燭。涪江歸舟。正在朝暮。以是南望攢
祝而已。弟。跧伏田圃。年益深而病益甚。頓無人
世況味。悶憐奈何。相距踔遠。未卽聞
知。卽不得奉餞於靑靴發行之日。又不以
書尺替候於絶域之中。顧念平昔眷厚
之誼。豈忍如是
沒沒哉。第切愧
悚之至。餘。惟冀
珍重自愛。以副遠
忱。不備。伏惟
尊察。謹拜候上狀。
丙寅三月初十日。弟。權東範東卨。侍生。東鎭。拜手。

二緡銅汗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