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3월 10일에 權東範 등이 고금도로 유배를 간 일과 관련하여 李㙖에게 보낸 편지
1806년 3월 10일에 權東範 등이 古今島로 유배를 간 일과 관련하여 俛庵 李㙖(1739~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에 李㙖가 유배를 가게 되었던 일은, 자신들이 소식을 듣고서 더없이 두려웠다고 하였다. 더구나 궁벽한 바다의 적막한 곳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바가 아닌 좋지 못한 환경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고 하였다. 이어 유배지로 평안하게 도착하였으며, 유배지에서 건강이 나빠지지는 않았으며, 풍토 및 기후가 그다지 심하게 다르지는 않으며 일상생활도 평온한지 안부를 물었다. 李㙖가 평소 가학을 통해 얻은 소양이 넉넉하니, 환란에 대처하는 자세가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더구나 우리 嶺南의 義理는 天地를 지탱하고 古今에 뻗어 있어서 소멸된 적이 없고 天運은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니, 李㙖가 조만간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權東範 등은 田圃에 칩거하고 있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병이 더욱 심해져서 조금도 세상사는 재미가 없으니, 스스로 걱정스럽고 가련하다고 하였다. 또한 李㙖가 사는 곳과 거리가 멀어서 유배 소식을 바로 듣지 못하였던 관계로 李㙖가 유배지로 출발하던 날에 직접 전별하지 못했고 또 李㙖가 유배지에 있는 상황에서 서신으로나마 대신 안부를 묻지 못한 데 대해, 부끄럽고 죄송스런 마음을 표하였다. 끝으로, 李㙖가 自重自愛하여 자신들의 정성에 부응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추신에서는, 2緡銅을 보낸다고 하였다.
참고로, 李㙖는 正祖代에 思悼世子 伸寃 上疏의 疏頭로 활약한 일을 계기로 懿陵參奉에 임명된 바 있고 또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해 1월에 康津縣 古今島로 유배를 갔다가 4월에 방면된 바 있다. 이는 正祖 사후 貞純王后 주도의 老論 一黨 체제가 확립되면서 英祖代의 壬午義理에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다시금 탄압하였던 정국과 관련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