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3월 7일, 李弼完이 李㙖가 古今島로 유배를 간 일과 관련하여 俛庵 李㙖의 堂姪에게 보낸 편지
1806년 3월 7일에 李弼完이 李㙖가 古今島로 유배를 간 일과 관련하여 俛庵 李㙖의 堂姪에게 보낸 편지이다.
늦봄에 어버이를 모시고 있는 상대의 體候가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이어 상대 堂叔을 島配하라는 명령이 내린 데 대해 그지없이 경악했다고 하였다. 일흔 살의 나이로 천 리 머나먼 길을 떠나는 것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아무리 관계가 소원한 일반 사람이라 하더라도 참으로 한탄스러워 하고 있는데 더구나 一堂의 자제들이야 그 마음이 오죽하겠느냐고 하면서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李弼完 자신은 직접 나아가 위문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喪中에 있는 관계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情誼로 헤아려 보건대 부끄럽고 죄스런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한편으로 문중 차원에서 위문편지를 보내려고 계획한 지도 오래되었으나 宗家에 喪事가 나서 이제야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대략 편지를 써서 보내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상대가 인편을 찾아서 李㙖가 있는 配所에 이 편지를 전달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끝으로, 상대 문중의 각 집안사람들이 모두 평안한지 묻고 황망하여 따로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지는 못한다고 하면서 이 편지를 돌려 보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참고로, 李㙖는 正祖代에 思悼世子 伸寃 上疏의 疏頭로 활약한 일을 계기로 懿陵參奉에 임명된 바 있고 또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해 1월에 康津縣 古今島로 유배를 갔다가 4월에 방면된 바 있다. 이는 正祖 사후 貞純王后 주도의 老論 一黨 체제가 확립되면서 英祖代의 壬午義理에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다시금 탄압하였던 정국과 관련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