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3월 15일, 壺谷 柳範休등이 유배지에서의 안부를 묻고 解配를 예견하게 하는 한양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俛庵 李㙖에게 보낸 편지
1806년 3월 15일에 壺谷 柳範休(1744~1823) 등이 유배지에서의 안부를 묻고 解配를 예견하게 하는 한양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俛庵 李㙖(1739~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틀 밤을 함께 보내고 유배를 가는 李㙖를 보냈을 때 자신들의 슬펐던 마음, 그리고 마치 나그네가 집으로 돌아가는 양 근심스런 기색도 없이 훌훌 길에 올랐던 李㙖에 대해 감탄했던 마음을 아울러 언급하였다. 古今島에서 돌아온 際可 李秉運에게 편지로 물어서 유배지로 갈 때와 유배지에 도착하고 난 뒤의 소식을 상세히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먼 길을 갔던 李㙖의 건강 상태가 나빠지지 않았고 古今島의 風土가 그다지 나쁘지 않으며 그곳 백성들의 풍속에도 취할 만한 점이 있으며 舍館의 주인도 뜻대로 따라 준다고 하니 여러모로 매우 마음이 놓이고 기뻤다고 하였다. 이어 李㙖와 李秉鐸의 안부를 다시 물었다. 한양 소식을 李㙖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을 줄로 생각되지만 李㙖가 유배 길에 오르던 날에 李㙖의 처벌을 주장했던 言官이 付處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姜時煥의 편지 내용을 전해 듣기로 영의정인 李秉模가 李㙖에게 사면령을 내리자고 筵席에서 아뢰었다고 하므로, 李㙖가 풀려 돌아와 기쁘게 웃으며 맞이하는 일도 머지않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道內에 上疏에 관한 논의가 제기되었는데, 자신들은 이것이 시의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다행히 老成들의 논의에 힘입어 調停되었다고 했고, 李秉運이 제때 돌아와서 힘을 썼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편지를 써놓고 부치지 않은 상태에서 李㙖에 대한 사면령이 내려지게 되었다고 하면서 기쁜 마음을 표하였다. 병으로 인해 따로 축하편지를 작성하지는 못하고 이 편지에 추신으로 적는다고 하였다.
본 편지는 柳範休의 문집인 『壺谷集》 卷2에 「與李稺春 㙖○丙寅」이라는 제목으로 편집되어 실려 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