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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김성륜(金聖倫) 외 5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806.4717-20140630.06352570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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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성륜, 배홍택, 김상구, 배상룡, 권응두, 권달성, 이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회곡리
작성시기 1806
형태사항 크기: 37.3 X 47.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소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6년 김성륜(金聖倫) 외 5인 서간(書簡)
1806년 1월 17일에 김성륜 등이 이우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성륜 등은 이우에게 유배의 명이 떨어져서 유배 길의 여정이 임박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일흔의 나이로 고금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으니 영남의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경악하고 염려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고 하였다. 이우를 직접 전별해야 하지만 자신들은 각자 몸의 병으로 인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으니 매우 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하였다. 이우가 평소의 뜻대로 여유로운 태도를 가질 것이라 믿고 있으니 바다의 장기(瘴氣)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조만간 무사히 귀환하기를 기원하였다. 추신에는 약소하나마 2관동을 신의로 보낸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효심

상세정보

1806년 1월 17일, 金聖倫 등이 俛庵 李㙖에게 보낸 편지
1806년 1월 17일에 金聖倫 등이 俛庵 李㙖(1739~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聖倫 등은 李㙖에게 유배의 명이 떨어져서 유배 길의 빠듯한 여정이 임박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이는 옛날의 君子도 면치 못했던 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李㙖는 일흔의 나이로 머나먼 곳에 있는 古今島로 유배를 가게 되었으니, 우리 嶺南의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모두 경악하고 염려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고 하였다. 자신들은 李㙖가 출발하는 날에 직접 나아가 전별해야 하지만 각자 身病으로 인해 마음먹은 대로 할 길이 없다고 하면서, 매우 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하였다. 李㙖가 평소 처한 상황을 순리대로 받아들인다[素患行患]는 뜻을 함양한바 자신들이 억지로 시킬 필요도 없이 여유로운 태도를 가질 것이리라 믿고 있으니, 바다의 瘴氣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조만간 解配하라는 恩命을 받아서 무사히 귀환하기를 기원하였다. 추신에서는, 약소하나마 2貫銅을 贐儀로 보낸다고 하였다.
참고로, 李㙖는 正祖代에 思悼世子 伸寃 上疏의 疏頭로 활약한 일을 계기로 懿陵參奉에 임명된 바 있고 또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해 1월에 康津縣 古今島로 유배를 갔다가 4월에 방면된 바 있다. 이는 正祖 사후 貞純王后 주도의 老論 一黨 체제가 확립되면서 英祖代의 壬午義理에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다시금 탄압하였던 정국과 관련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6년 김성륜(金聖倫) 외 5인 서간(書簡)

李參奉 行軒。
檜谷書堂 候狀。 謹封。
卽伏聞
恩譴肅下。嚴程在邇。此古君子所不
免之事也。然
執事以七耋之年。作海島千餘之里
行。凡吾萬餘人。孰不驚慮而失
措也。弟等。卽當面面躬餞於發程之
日。而各汨身病。末由遂意。只切況歎
而已。惟恃執事平日所養於素患行
患之義。不待勉强而綽裕。則南溟瘴癘
之氣。不足爲慮也。惟冀早晩蒙
恩霈好還耳。餘。不宣。伏惟
情察。謹拜候上狀。
丙寅正月十七日。金聖倫裵弘宅金相九裵相龍權應斗權達誠。等拜。

以二貫銅。忘略贐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