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3월 27일, 俛庵 李㙖가 유배 중의 근황을 전하고 공부를 독려하기 위해 孫壻인 金重南에게 보낸 편지
1806년 3월 27일에 俛庵 李㙖(1739~1810)가 유배 중의 근황을 전하고 공부를 독려하기 위해 孫壻인 金重南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평소 아무 일이 없을 때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이별했을 때의 마음이 슬펐다고 하면서 이는 金重南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봄철도 다 간 이때에 査夫人과 金重南이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從氏의 喪制가 이미 지나갔는지도 물었다. 또한 金重南의 堂叔들 및 門內의 여러 長者들의 안부도 물었다.
李㙖 자신은 머나먼 유배지에 잘 도착한 것은 모두 至親과 故舊들 덕분이라고 하였고, 이곳에 도착하여 몸 관리를 잘 하고 있는 것은 모두 임금님의 덕택이라고 하였다. 모든 여건이 독서하기에 참으로 좋기는 하지만, 氣血이 쇠잔해져서 비록 自强하려고 하지만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공부한 소득이 있더라도 마찬가지로 기억하지를 못하니, 옛사람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탄식한 말이 참으로 들어맞는 것이라고 하였다. 李㙖는 자신의 이러한 공부 상황을 바탕으로 金重南이 자신의 말을 늙은이가 으레 늘어놓는 얘기라고 무시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간절히 당부하였다.
끝으로, 자신에 대한 모든 소식은 이곳에서 돌아가는 李秉鐸을 통해서 자세히 듣도록 하라고 하였다.
참고로, 李㙖는 正祖代에 思悼世子 伸寃 上疏의 疏頭로 활약한 일을 계기로 懿陵參奉에 임명된 바 있고 또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해 1월에 康津縣 古今島로 유배를 갔다가 4월에 방면된 바 있다. 이는 正祖 사후 貞純王后 주도의 老論 一黨 체제가 확립되면서 英祖代의 壬午義理에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다시금 탄압하였던 정국과 관련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