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小盡日, 俛庵 李㙖가 病勢에 대해 묻고 解配된 뒤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고종사촌인 崔濼에게 보낸 편지
1806년 小盡日에 俛庵 李㙖(1739~1810)가 病勢에 대해 묻고 解配된 뒤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고종사촌인 崔濼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情義가 남달랐던 古今島에서의 작별 상황을 언급하면서, 그 당시에 아무리 아녀자처럼 슬퍼하는 마음을 짓지 않으려고 했어도 耿耿한 마음은 골수에 사무쳤다고 하였다. 解配되어 돌아온 날에 崔濼이 소식을 듣고서 가장 먼저 맞으러 나올 것이리라 생각했었는데 오래 되어도 만나지 못했으니 마음으로 의아해 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霞谷에서 온 柳景七을 만났는데 그가 崔濼의 병이 가볍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고 하면서, 자신의 마음이 마치 열 길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 이상으로 놀랐다고 하였다. 그런데 崔濼의 병세에 대해 李㙖가 탐문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방금 淸彦(崔㵓)의 편지를 받아보건대 崔濼의 병세가 조금 호전되었다고 하므로, 和樂한 君子는 神이 돌보아 주는 법이니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하였다.
이에 대한 李㙖 자신의 기쁜 마음은 자신이 古今島에 있을 때에 용서해 주라고 한 명령을 받았던 것 이상이었다고 하였으며, 요사이는 병세가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별다른 고생을 겪지 않고 자못 한적한 흥취를 가지면서 古今島에서 지내다가 뜻밖에 사면을 받고 돌아왔다고 하였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극심한 더위를 맞게 되었다고 하면서, 古今島에서 이러한 더운 계절을 만나지 않게 된 것에 대해 안도감을 표하였다. 解配되어 돌아오는 도중에서나 이곳에 있으면서나 모두 질병이 없다고 하였으며, 친척과 친구들이 자신의 解配를 축하하여 한때나마 즐거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니 도리어 유배를 가지 않은 상황보다 더 낫다고도 하였다.
끝으로, 崔濼의 마을에 관한 일에 대해 士林의 논의가 매우 훌륭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더운 철에 情義가 깊고 두터운 자라고 할지라도 난색을 표하는 자가 있을 것이므로 연전과 같이 零星해질 우려가 있을 듯하다고 하면서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참고로, 李㙖는 正祖代에 思悼世子 伸寃 上疏의 疏頭로 활약한 일을 계기로 懿陵參奉에 임명된 바 있고 또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해 1월에 康津縣 古今島로 유배를 갔다가 4월에 방면된 바 있다. 이는 正祖 사후 貞純王后 주도의 老論 一黨 체제가 확립되면서 英祖代의 壬午義理에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다시금 탄압하였던 정국과 관련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