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6월 6일, 金夏範이 解配 뒤의 안부를 교환하기 위해 俛庵 李㙖에게 보낸 편지
1806년 6월 6일에 金夏範이 解配 뒤의 안부를 교환하기 위해 俛庵 李㙖(1739~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李㙖에게 사면령이 특별히 내려져서 금방 돌아오게 된 일은 참으로 嶺南 人士들이 함께 기뻐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더구나 바다의 瘴氣를 겪었음에도 몸 상태가 좋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고 하였다. 지난번에는 행차한 李㙖가 素履 姜兄이 있는 곳에 들렀다는 소식을 듣고서 族兄과 같이 그날로 달려갔더니 李㙖는 이미 멀리 떠나고 난 뒤였다고 하였다. 이어 혹심한 더위에 李㙖 및 유배 내내 그를 모셨던 아들 李秉鐸이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근래 더위를 심하게 먹어서 병으로 신음하며 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從孫女의 宿病이 이미 쾌차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이는 참으로 돌봐주신 덕택이라고 치하하였다. 李㙖의 손자가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묻고, 그 標致가 크게 범상치 않으니 잘 길러내면 좋은 그릇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李㙖가 解配되어 돌아오던 날에 길에서 영접하지 못하였으므로 뒤늦게라도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자 하였으나 얽매인 일이 많아서 정성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송구스런 마음을 가눌 수 없다고 하였다.
참고로, 李㙖는 正祖代에 思悼世子 伸寃 上疏의 疏頭로 활약한 일을 계기로 懿陵參奉에 임명된 바 있고 또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해 1월에 康津縣 古今島로 유배를 갔다가 4월에 방면된 바 있다. 이는 正祖 사후 貞純王后 주도의 老論 一黨 체제가 확립되면서 英祖代의 壬午義理에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다시금 탄압하였던 정국과 관련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