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2월 17일, 尹成憲이 俛庵 李㙖의 유배와 관련하여 사위인 懼翁 李秉鐸에게 보낸 편지
1806년 2월 17일에 尹成憲이 俛庵 李㙖의 유배와 관련하여 사위인 懼翁 李秉鐸(1760~1832)에게 보낸 편지이다.
尹成憲은 사돈인 李㙖가 유배를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제일 늦게 듣는 바람에 古今島로 출발하는 날에 만나서 전별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李㙖 측에서 괴이하게 여겼을 것이라고 하였다. 날씨가 순조롭지 못한 상황에서 먼 길을 가는 것에 어려움이 많았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중도에 사고가 나지 않았으며 李㙖의 기력도 손상되지 않고 잘 도착하였는지 물었다. 尹成憲은 李秉鐸이 아들 걱정을 하지 말고 몸조심 잘하여 李㙖를 모시고 있는 상황에서 병이 나지 않는 것이 자신의 바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바다의 瘴氣가 건강을 해칠까 우려되어 걱정스런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는 公論이 제기되어 장차 조정에 上疏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머지않아 사면령이 내려질 것이니 이런 점을 가지고 사돈께 위로해 드리라고 당부하였다. 추신에서는, 자신의 아들도 마땅히 편지를 써서 보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하면서 李秉鐸이 양해해 달라고 하였으며 돈 2냥을 부쳐 보낸다고 하였다.
참고로, 李㙖는 正祖代에 思悼世子 伸寃 上疏의 疏頭로 활약한 일을 계기로 懿陵參奉에 임명된 바 있고 또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해 1월에 康津縣 古今島로 유배를 갔다가 4월에 방면된 바 있다. 이는 正祖 사후 貞純王后 주도의 老論 一黨 체제가 확립되면서 英祖代의 壬午義理에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다시금 탄압하였던 정국과 관련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