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1월 16일, 金相龍 등이 유배를 가게 된 일과 관련하여 俛庵 李㙖에게 보낸 편지
1806년 1월 16일에 金相龍 등이 유배를 가게 된 일과 관련하여 俛庵 李㙖(1739~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세상일은 어떤 것이든지 생길 수 있는 법이지만 李㙖가 유배를 가게 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하였다. 이 일은 우리 嶺南의 운수와 크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므로 李㙖를 위해서 위문할 것까지도 없으나 아주 멀리 떨어진 바다의 瘴氣는 늘그막에 감당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하면서, 어떤 고난이든지 순리대로 대처하는 것이야말로 이러한 상황에서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李㙖의 참된 지식과 명석한 견해, 학문을 통해 얻어진 의지력이 필시 평소에 講定한 바가 있을 터이지만, 서로 아끼는 정을 가진 자신들로서는 지극히 걱정되는 마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였다. 이어 유배지로 언제 출발하는지, 행차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들은 환란을 함께하는 도리로 볼 때 나아가서 직접 전별해야 하지만 각자 근심거리와 병고로 인해서 정성을 이룰 길이 없으니 親知 사이의 도리를 져버렸다고 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표하였다. 또한 이제까지 즐겁게 從遊해왔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더욱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하였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上舍 조카의 祥事가 임박하여 슬픈 마음이 더해지니 이만 줄인다고 하면서, 부디 몸조심하여 사면령이 내려질 날을 기다리시라고 당부하였다. 추신에서는, 2緡銅을 약소하나마 올린다고 하였다.
참고로, 李㙖는 正祖代에 思悼世子 伸寃 上疏의 疏頭로 활약한 일을 계기로 懿陵參奉에 임명된 바 있고 또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해 1월에 康津縣 古今島로 유배를 갔다가 4월에 방면된 바 있다. 이는 正祖 사후 貞純王后 주도의 老論 一黨 체제가 확립되면서 英祖代의 壬午義理에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다시금 탄압하였던 정국과 관련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