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11월 15일, 寒松齋 李楨輔가 解配와 관련하여 俛庵 李㙖에게 보낸 편지
1806년 11월 15일에 寒松齋 李楨輔(1766~1845)가 解配와 관련하여 俛庵 李㙖(1739~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에 李㙖가 멀리 유배를 보내라는 명을 받게 되니 모든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가 위문하기에 바빴으나 자신만은 그렇게 하지 못하였고, 李㙖가 사면령을 받고 돌아왔을 때에는 축하객이 집에 가득하였으나 또 자신은 달려가 인사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자신은 世家의 子弟로서 매우 두터운 보살핌을 받았으나 30리 떨어진 곳에 있으면서 이처럼 인사를 소홀히 하고 있으니, 道가 행해지지 않으므로 뗏목을 타고 바다로 떠나고 싶다고 했던 孔子의 용기를 생각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워 흐르는 땀이 등을 적신다고 하였다. 이어, 나라의 기강이 다시 서고 온 영남의 의리가 더욱 밝아지게 된 것은 李㙖가 古今島로 한 번 귀양 갔던 氣力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하면서 의의에 대해 평가하였다. 더구나 험한 길을 가서 瘴氣 가득한 古今島에서 지냈음에도 李㙖의 기력이 상하지 않은 데 대해 기쁜 마음을 전하였다. 겨울철도 절반이나 된 시점에서 李㙖와 그의 아들 李秉鐸 및 堂內 친지들이 평안하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거듭되고 있는 집안의 여러 喪事로 슬퍼하고 있는 자신의 근황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였다.
참고로, 李㙖는 正祖代에 思悼世子 伸寃 上疏의 疏頭로 활약한 일을 계기로 懿陵參奉에 임명된 바 있고 또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해 1월에 康津縣 古今島로 유배를 갔다가 4월에 방면된 바 있다. 이는 正祖 사후 貞純王后 주도의 老論 一黨 체제가 확립되면서 英祖代의 壬午義理에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다시금 탄압하였던 정국과 관련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