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1월 19일, 鄭檍 등이 古今島로 유배를 가게 된 일과 관련하여 俛庵 李㙖에게 보낸 편지
1806년 1월 19일에 鄭檍 등이 古今島로 유배를 가게 된 일과 관련하여 俛庵 李㙖(1739~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아무리 천하의 일은 어떤 것이든 생겨날 수 있는 것이지만 李㙖가 70의 나이에 천리 머나먼 곳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으니 吾黨의 厄運이 이러한 지경에 이를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하였다. 瘴氣가 가득한 곳은 늘그막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니, 아무리 李㙖가 평소에 학문을 통해 쌓은 의지력이 있어서 반드시 순리대로 버텨 낼 것이라 하더라도 지극히 아끼는 처지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어, 근래 李㙖의 안부를 묻고 아울러 출발은 며칠에 하는지, 길을 떠나는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들은 함께 나아가 李㙖와 작별인사를 해야 하지만 鄭檍과 鄭必啓는 衰病으로 인해서 말에 올라 탈 형편이 못되고 鄭光翊은 지난해 12월 말에 우연히 奇疾에 걸려서 모두 수십 일 동안이나 조금도 차도가 없는 형편이라고 하였다. 또한 바삐 다그쳐서 李㙖를 출발시킬 줄로 생각되는데 자신들이 소식을 들은 것이 조금 늦었고, 다른 子姪들이 각자 긴요한 일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자신들을 대신해서 보내지도 못한다고 하면서, 그저 남쪽을 바라보며 서글프고 안타까운 마음만이 든다고 하였다. 유배를 떠났던 옛사람들이 매우 많았지만, 道州로 귀양 가는 蔡元定을 절에서 떠나보낼 때 평상심을 잃지 않았던 고사가 바로 오늘날 李㙖가 본받아야 할 것인데, 이것은 자신이 말할 필요도 없이 李㙖가 가슴속에 이미 작정하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유배지로 가는 과정에서 보중하여 모든 嶺南 사람들의 바람에 부응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추신에서는, 돈 2貫文을 약소하나마 올린다고 하였다.
참고로, 李㙖는 正祖代에 思悼世子 伸寃 上疏의 疏頭로 활약한 일을 계기로 懿陵參奉에 임명된 바 있고 또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해 1월에 康津縣 古今島로 유배를 갔다가 4월에 방면된 바 있다. 이는 正祖 사후 貞純王后 주도의 老論 一黨 체제가 확립되면서 英祖代의 壬午義理에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다시금 탄압하였던 정국과 관련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