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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이급(李𨦮) 외 2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806.0000-20140630.063525700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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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급, 이수, 이섭, 이우
작성시기 1806
형태사항 크기: 37.5 X 33.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소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6년 이급(李𨦮) 외 2인 서간(書簡)
1806년 4월 20일에 이급 등이 해배(解配)를 축하하기 위해 이우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우가 유배를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늘그막에 당해서는 안 되는 일이므로 남들보다 더욱 우려하고 분개했다고 하였다. 다행이 칠계의 최 척형을 통해서 이우고금도로 무사히 갔으며 그곳의 자연적, 인문적 환경이 그다지 크게 나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마음이 놓인다고 하였다. 또 얼마 안 되어 온전히 석방하라는 명을 받게 되니 공적인 측면이나 사적인 측면에서 몹시 감사하게 여겼다고 하였다. 이우가 유배를 갔다가 돌아온 것은 이우의 개인적인 측면보다는 영남을 위해서 빛나는 일일 것이라고 하면서 안부를 물었다. 끝으로 상중에 있는 자신들이 직접 축하드리지 못하여 위문편지에 대한 답장을 보내는 편에 축하편지를 드린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효심

상세정보

1806년 4월 20일, 李𨦮 등이 解配를 축하하기 위해 俛庵 李㙖에게 보낸 편지
1806년 4월 20일에 李𨦮 등이 解配를 축하하기 위해 俛庵 李㙖(1739~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들은 뜻밖에 李㙖가 천 리 머나먼 곳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이것이 늘그막에 당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서 남들보다 더욱 우려하고 분개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난번에 李㙖 쪽에서 돌아온 漆溪의 崔 戚兄을 통해서 李㙖가 아주 멀리 떨어진 古今島로 무사히 갔으며 그곳의 자연적, 인문적 환경이 그다지 크게 나쁘지는 않다는 사실을 전해 주었다고 하면서, 이에 조금이나마 멀리 있는 자신의 마음이 놓이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주 다행스럽게도 금방 온전히 석방하라는 명을 받게 되니 공적인 측면이나 사적인 측면에서 몹시 감사하게 여겼다고 하였다. 또한 이 점에서 생각해 보건대 이번에 李㙖가 유배를 갔다가 돌아온 것은 李㙖의 개인적인 측면보다는 우리 嶺南을 위해서 빛이 나는 일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언제 돌아왔으며 건강 상태는 어떠냐며 안부를 물었다. 끝으로, 喪中에 있는 자신들이 직접 나아가 축하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위문편지에 대한 답장을 보내는 편에 이렇게 축하편지를 드린다고 하였다.
참고로, 李㙖는 正祖代에 思悼世子 伸寃 上疏의 疏頭로 활약한 일을 계기로 懿陵參奉에 임명된 바 있고 또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이해 1월에 康津縣 古今島로 유배를 갔다가 4월에 방면된 바 있다. 이는 正祖 사후 貞純王后 주도의 老論 一黨 체제가 확립되면서 英祖代의 壬午義理에 반하는 정치적 활동을 다시금 탄압하였던 정국과 관련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6년 이급(李��) 외 2인 서간(書簡)

疏上。
李參奉 座前。 稽顙謹封。
稽顙言。伏聞
座下意外有千里編管之報。此非
晩暮之景所宜遭者。所以仰慮憂憤之忱。不敢自後。
頃因漆溪崔戚兄。還自彼中。歷傳
御者利涉鯨波。且水土風俗。不甚殊惡云。稍以遠
慰萬一也。何幸天道好還。義理復明。至有遄蒙全釋之
命。公私感祝之餘。因伏念今此一行。固不足欣慨於
長者。而爲吾。庸非一番光鮮耶。不審曷日
返稅。氣候不至減頓。而有諐節否。伏慕區區。侍生罪人
等。苟延視息。忍過節變。痛霣何達。旣不敢躬造拜
賀。故玆因答疏便。替伸慕庸之忱耳。荒迷不次。
伏惟
鑑察。
丙寅四月二十日。侍生罪人。李��。稽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