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년 8월 19일, 俛庵 李㙖가 科擧 개최 등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
1805년 8월 19일에 俛庵 李㙖(1739~1810)가 科擧 개최 등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안부 부분에서는 특히 딸이 걸핏하면 병에 걸려서 상대에게 근심을 끼쳐드리고 있는 상황에 대해 걱정스런 마음을 표하였다. 또 작은 손자가 점점 꾀가 나서 말도 하고 스스로 설 줄도 안다 하니 기특하고 사랑스럽다고 하면서, 상대가 애지중지할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李㙖 자신은 여름 내내 더위로 고생하였고 서늘해진 이 시기에는 齒痛을 앓고 있다고 하면서, 괴로운 심사를 전하였다. 科擧가 열린다는 소식은 곤궁한 유생에게는 하나의 액운이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간신히 응시하러 간다고 하더라도 성패가 어찌될지도 모르고 또 무사히 科場에 출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상대 仲氏야 이번에는 급제할 것이고, 季兄은 실력을 크게 발휘할 것이라고 하면서, 미리 치하해 마지않는다고 하였다.
끝으로 작황에 대해서는, 늦게 내린 비가 이전의 손실을 만회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많은 식구가 겪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하였다.
딸 운운한 대목으로 볼 때, 이 편지의 수신인은 李㙖의 사위인 金兌壽의 부친 金奎運일 것으로 보이나 확신할 수는 없다. 발급인 李㙖의 자는 穉春, 호는 俛庵, 본관은 韓山이다. 아버지는 小山 李光靖(1714~1789)이고, 어머니는 鶴峯 金誠一의 후손인 竹所 金良鉉의 딸이다. 大山 李象靖(1711~1781)의 조카로써 그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영남유생이 사도세자를 신원하기 위하여 상소하였을 때 疏首가 되었다가 古今島에 유배되었었고, 유일로 參奉에 제수되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