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년 윤2월 6일, 俛庵 李㙖가 안부를 교환하고 산송 처리 계획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하기 위해 表從祖에게 보낸 편지
1803년 윤2월 6일에 俛庵 李㙖(1739~1810)가 안부를 교환하고 산송 처리 계획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하기 위해 表從祖에게 보낸 편지이다.
해가 바뀌고 봄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으니, 상대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가눌 수 없다고 하였다. 이런 즈음에 상대 아들이 방문하여 편지를 전해주니 기뻤다고 하였으며, 상대의 기거가 철따라 좋고 膝下의 자제들도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한껏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어 봄비가 장마처럼 계속되고 있는 이때에 상대의 기후가 어떠한지 다시 안부를 물었다. 또한 마을에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전염병 기운이 가까이 이른 근심은 없는지 물었다.
李㙖는 걱정하고 애를 태우는 가운데 새해를 보내고 있었는데 다행히 무사히 마무리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至親 집안에서 요절한 이의 상사가 전혀 없지는 않았으니, 탄식할 만하다고 하였다. 武陵의 山訟은, 鄭生이 하는 짓이 갈수록 더욱 놀라워진다고 하였다. 전날 그의 堂叔이 올렸던 單子를 첨부하여 관에 呈訴하여 통렬히 다스리도록 해야 하지만, 이곳의 어린 조카들이 현재 科擧를 보는 일에 골몰되어 있고 先容도 없이 바로 呈訴하면 뜻대로 되리라는 보장이 없으므로 나중에 천천히 도모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또한 내방한 상대 아들이 먼 곳으로 왔는데 필경 쓸쓸하게 돌아가서 노친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없게 되었으니, 탄식할 만하다고 하였다.
끝으로, 3월쯤에 한 번 방문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발급인 李㙖의 자는 穉春, 호는 俛庵, 본관은 韓山이다. 아버지는 小山 李光靖(1714~1789)이고, 어머니는 鶴峯 金誠一의 후손인 竹所 金良鉉의 딸이다. 大山 李象靖(1711~1781)의 조카로써 그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영남유생이 사도세자를 신원하기 위하여 상소하였을 때 疏首가 되었다가 古今島에 유배되었었고, 유일로 參奉에 제수되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