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년 6월 23일, 柳台佐가 陵洞의 산송 문제와 인삼을 비롯한 약재 구입 등과 관련하여 柳相祚에게 보내는 편지
1803년 6월 23일 柳台佐(1763~1837)가 한양에서 관직 생활하는 가운데 陵洞의 산송 문제와 인삼을 비롯한 약재 구입 등과 관련하여 從兄 柳相祚(1763~1838)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편지의 서두는 류이좌가 관직에 제수되어 한양으로 올라온 이후 소식을 알지 못하여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6월 18일 성에 들어와서 22일에 사은숙배했지만 도중에 비를 만나 병이 난 것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였다. 근심스러운 중에 陵洞의 일은 아직까지 呈狀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안동권씨와 관련된 산송을 일컫는다. 館의 여러 벼슬아치들이 모두 연고가 있어서 홀로 번을 서면서 날을 보내니, 일의 빠르고 늦음을 기필할 수 없어 매우 난감하다고 했다.
인삼을 구입하여 고향에 부쳐 주기로 했으나, 사는 것과 파는 것이 현격히 달라 부르는 값이 매우 높고 품질도 미흡하여 늦게 보내게 되었다. 인삼은 8전쭝을 사서 보냈는데, 인삼 7뿌리 7전쭝은 그 값이 거의 16냥 5전이고 썰어놓은 인삼 10조각 1전쭝은 그 값이 1냥 2전이 되니, 모두 8전쭝이고 값은 17냥 7전이었다. 기타 약재는 密陽 叔이 돌아오는 편에 사서 보내고자 하지만 價物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서 기약할 수 없으며, 北蔘[함경도 삼]이 매우 귀하여 그 값이 1전쭝에 7, 8냥이나 되기 때문에 마음을 낼 수 가 없었다고 한다.
도목정사는 24일에 행한다는 소식과 재혼하는 일은 늦출 수 없으니, 빨리 도모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며, 以周에게 노잣돈 1냥을 주어 보냈는데, 도착했는지 궁금해 하였다. 다음 달 초에 呈疎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고자 하지만, 우선은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추록에는 泮村의 소식을 전했는데, 모두 일이 없고 一老는 지금 刑曹에 입직하고 있는데 陰城에 관한 일로 근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발급인 柳台佐는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士鉉이며, 호는 鶴棲이다. 父는 柳師春이다. 1794년에 문과에 급제한 이후 승문원가주서를 비롯하여 漢城府右尹, 禮曹參判, 同知義禁府事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수급인은 종형 柳相祚로 짐작된다. 편지에 翼侄의 안부를 묻는데, 류상조의 아들이 進翼이기 때문이다. 류상조의 자는 爾能이고, 호는 逸愚이다. 西厓 柳成龍의 8세손이며, 조부는 柳澐이다. 아버지는 柳宗春이며, 생부는 柳海春인데, 류이좌의 아버지와 형제 사이이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