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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류범휴(柳範休)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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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범휴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00
형태사항 크기: 25.7 X 45.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소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0년 류범휴(柳範休) 서간(書簡)
1800년 4월 11일, 류범휴가 자신의 거취 문제를 토로하고 문집을 교감하는 일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안변부사로 임명되어 있는 상태에서 류범휴안동에 머물고 있었다. 이에 경상도 관찰사가 그를 안변으로 보내라는 정조의 명을 받았다고 전하며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또 『대산집(大山集)』을 내년 봄에 간행 되는데 정본(定本)이 확정되지 않아 걱정스러운데 여러 선배들과 함께 정본을 교정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00년 4월 11일, 壺谷 柳範休가 자신의 거취 문제를 토로하고 文集을 校勘하는 일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
1800년 4월 11일에 壺谷 柳範休(1744~1823)가 자신의 거취 문제를 토로하고 文集을 校勘하는 일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에서 柳範休安邊府使로 재직하고 있는 자신의 거취 문제와 스승인 大山 李象靖의 『大山集』 校勘 문제에 대해 주로 언급하고 있다. 이 당시 柳範休安邊府使로 임명되어 있는 상태에서 고향인 安東에 머물고 있었는데, 경상도 관찰사로 하여금 柳範休를 재촉하여 安邊으로 돌아가게 한 뒤에 장계로 보고하게 하라는 正祖의 명을 받게 되었다. 이에 대해 柳範休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하면서 난감한 마음을 전하였다. 이어 『大山集』은, 諸賢들의 노력에 힘입어서 이미 두서를 이루어 장차 내년 봄에 간행하는 일을 착수하게 되었으니 매우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다만 定本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 있어 걱정스럽다고 하면서, 지난번 모여서 校勘했던 것처럼 다시 여러 선배들의 眼目을 얻어서 定本을 교정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그런데 金文學의 편지에 좋은 의견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이 말이 매우 좋은 듯하다고 하였다. 金文學은 龜窩 金㙆인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큰 從氏가 오랫동안 설사증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추신에서는, 筆枝와 4緡銅을 올린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0년 류범휴(柳範休) 서간(書簡)

走俗回頭。歸者宜先。致書以謝。
湖山猿鶴。而迺爲記室所先。
又添却不敏之罪也。謹審初夏
經履節宣神衛。林泉日長。玩樂益
崇深。際此儒林蕭素之日。吾黨之
士。望執事而倚重。如鼎呂也。弟。三
年一由。再呈辭狀。苦未遞免。千
萬意外。
恩飭嚴重。使嶺伯催促還官後。
狀聞事有旨。而區區私分。萬不獲已。
又不免違越嚴敎。重作罪過。惶
恐俟勘。無所容措。奈何。
先師遺稿。賴諸賢敏事之力。頭緖
已成。將以明春始手。係是斯文。萬
幸。範休。作客千里之外。曾不如路人
焉。慙悚欲死。但定本尙未出例。竊
爲悶然。今日何處。更得如疇昔會
校。諸先輩眼目。以更正定本。聞金文學有書。有好
議論云。此言甚善。如何。如弟。雖有百範。何足有無。而
書末假借。何如是也。職名解後。聞校役有命。當掃
萬趨走。謹奉
硏於末席。聞
明日有會。而碍
掣非一二委
折。信可知
之耳。
伯從氏老兄。聞
久患泄候。不
勝仰慮。忙未
各候。同鑑此
紙。以替積歲
面目。是望。不備。
下照。
庚申四月十一日。損弟。柳範休。頓首。

筆枝汗伴。四緡銅又呈。與
伯從氏分作。一時饌價。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