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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이우(李㙖)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800.4717-20140630.063525700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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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00
형태사항 크기: 27.9 X 41.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소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0년 이우(李㙖) 서간(書簡)
1800년 12월 12일, 이우가 빌린 돈에 관한 일을 문의하기 위해 외종조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 척군(權戚君)을 만나 편지를 받고 외종조와 여러 식구들의 안부를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이우 자신은 과부였던 며느리를 잃고 또 종형 이윤의 상사를 당하여 고초를 겪고 있는 자신의 심정을 전하였다. 무릉의 빌린 돈은 내앞에 갚아야 하는데 14냥을 마련하면 되는지 물었다. 아니면 전에 보내준 10냥으로 신석(申石)의 위전(位田)을 마련할 계획이 있다면 자신이 24냥을 마련해야하는 것인지 물었다. 신석의 위전에 관한 논의에 도움을 줘야하는데 자신이 보탬을 주지 못하여 부끄럽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내년에 무릉재사(武陵齋舍)에서 뵙기를 청하며 편지를 마쳤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00년 12월 12일, 俛庵 李㙖가 債錢에 관한 일로 문의하기 위해 外從祖에게 보낸 편지
1800년 12월 12일에 俛庵 李㙖(1739~1810)가 債錢에 관한 일로 문의하기 위해 外從祖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正祖의 사망으로 인한 國喪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外家의 심정은 私喪을 당한 것 이상으로 슬플 것이라고 하였다. 자신이 외출하고 없는 사이에 상대의 아들(자신의 외숙)이 자신의 마을에 들러서 外從祖의 편지를 전해 주어 책상에 그 편지가 놓여 있었으니, 매우 기뻤다고 하였다. 지금 또 權 戚君을 만나 편지를 전달받고서 外從祖와 슬하의 여러 식구들이 평안하게 지내고 있음을 알게 되니, 마음이 놓였다고 하였다. 내일이 곧 자신의 외할머니의 忌日인지라 어버이를 모두 여읜 상황에서 온갖 감회가 든다고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두 통의 편지를 받게 되니, 더욱 감사하는 마음이 지극하다고 하였다. 李㙖 자신은 과부 신세였던 며느리(李㙖의 아들인 李永萬의 부인 密陽孫氏)를 잃은 데다 또 종형 李{土+允}의 喪事를 당하였다고 하면서, 喪事로 인해 늘그막에 고초를 겪고 있는 자신의 심정을 전하였다. 武陵의 債錢에 관한 일은 外從祖의 뜻을 잘 알겠다고 하면서, 내용대로 내앞[川前]에 갚아야 하겠는데 다만 자신이 마련해 보내야 하는 것이 14냥이 맞는지 물었다. 아니면 전에 보내주셨던 10냥으로는 申石의 位田을 마련하려는 계획이었다면 자신이 24냥을 마련해야 하는 것인지 물었다. 각 집안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 몇 냥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독촉하여 받아내서 정리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申石의 位田에 관한 논의는 매우 좋으니 내외 자손이 된 자들이 마땅히 힘을 모아야 하는데 자신이 조금도 보탬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지없이 부끄럽다고 하였다. 끝으로, 늙은 자신은 어버이를 여읜 슬픈 감회가 더욱 간절해지고 있어서 外從祖를 모시고 조금이나마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다고 하면서, 내년에 봄 날씨가 따뜻해진 뒤에 武陵齋舍에서 뵙기를 청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0년 이우(李㙖) 서간(書簡)

槐亭調案 執事。
蘇湖 表從孫 謹候狀上。 除式謹封。
國哀普切如喪。況我
外氏情事。未伸哀隕之慟。不啻如私喪而已。奈何奈何。
頃自外還。胤叔侍已戞過陋巷。所
下書在陳案。載深欣悵。卽見權戚君。又承下問。憑伏審
靜養體履對時茂納。膝下諸況。均得平迪。慰仰
豈勝區區。明日是我
王母諱辰。孤露之餘。百感來攻。於是。而獲奉兩度
下敎書。尤切感涕之至。表從孫。殃禍未艾。旣失孀婦。
又哭從兄。豈意遲暮之歲。備此種種苦楚乎。伏蒙
前後書問。哀悶有加。每每承讀。尤切悲涕。武陵債錢。
謹悉示意。當依下示。以送報川前。但未知自此
辦送者。爲十四兩否。抑前所下送十兩。爲申石
位田計。則自此當辦卄四兩否。各家所有者。不
知爲幾兩。然當督捧收殺計。申石位田之議。
亦甚善。爲內外子孫者。所當倂力。而袖手不能自效
絲豪。愧歎無已。明年春和後。可得復奉
杖屨於武陵齋舍中否。老夫益切孤露之懷。思欲復
陪杖屨。可以少慰矣。如何如何。餘。不備。伏惟
下察。謹謝狀上。
庚申臘月十二日。表從孫。李㙖。拜。